나는 이들을 가족이라서 응원했나, 부모라서 안타까워했나? 내 대답은 후자에 더 가깝다.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에서 가장 절실했던 것은 초능력이 아니라 아이를 지키려는 마음이었다.
영화는 네 사람이 능력을 얻는 과정을 길게 되풀이하지 않는다. 이미 영웅으로 활동한 지 4년이 된 가족을 곧바로 소개한다. 출발은 산뜻하지만, 이들이 함께 살아온 시간을 나까지 느끼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천재 과학자 리드와 그의 아내 수는 아기를 기다린다. 행성을 먹는 갤럭투스는 그 아이를 넘기면 지구를 살려주겠다고 요구한다. 행성을 먹는 쪽이 아동 인도 조건까지 정하니, 협상 절차부터 일방적이다.
아이와 지구를 함께 지키겠다는 선택에는 나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특히 수가 진통을 겪으면서도 우주선을 숨겨야 하는 순간에는 몸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부모의 절박함을 믿었다. 하지만 네 사람이 오래된 가족이라는 데는 마음이 덜 갔다.
부모는 믿겼다, 가족은 덜 가까웠다
나는 아이를 지키려는 부모의 마음은 믿었지만, 네 사람 모두에게 똑같이 가까워지지는 못했다. 가족이라는 설명은 빨랐고, 그 설명을 내 마음으로 받아들일 시간은 짧았다.
활동 4주년에서 시작하는 선택 자체는 좋다. 능력을 얻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또 기다릴 필요가 없다. 영화는 이미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음 문제가 찾아왔다는 데 집중한다.
특히 아기를 기다린다는 설정은 이 출발에 잘 맞는다. 오래 함께한 가족도 새 식구를 맞을 때는 처음 겪는 두려움 앞에 선다. 리드가 천재라는 사실도 그 두려움을 없애주지 못한다.
문제는 인물들이 함께 보낸 시간과 내가 이들을 지켜본 시간이 다르다는 점이다. 네 사람에게는 쌓인 추억이 있지만, 내게는 이제 막 소개받은 관계다. 영화는 그 거리부터 조금 더 좁혔어야 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거창한 과거 이야기가 아니다. 누가 누구의 걱정을 먼저 알아채고, 누구의 말에 유독 쉽게 짜증을 내는지다. 그런 사소한 반응이 쌓여야 위기 속에서 서로를 찾는 마음도 더 구체적으로 와닿는다.
그런데 지구가 사라질 위협이 일찍 찾아오면서 관계를 익힐 여유가 줄어든다. 네 사람은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를 떠안는다. 협력하는 팀이라는 점은 분명해도, 편하게 기대는 가족의 모습은 덜 남는다.
갤럭투스의 거래는 이 빈틈을 부모의 절박함으로 메운다. 아이를 넘기라는 요구를 거부하는 마음은 긴 설명 없이도 이해된다. 나는 그 거부에 동의했지만, 동의하는 것과 이 가족 곁에 있고 싶은 것은 다르다.
아무 죄 없는 아이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은 이 가족을 잘 몰라도 생긴다. 그래서 이 위기는 강력하면서도 가족 소개를 대신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들이어서 더 지키고 싶은 이유가 한 겹 더 필요했다.
수와 리드의 두려움이 선명할수록 그 차이도 또렷해진다. 아이를 잃을지 모르는 부모에게는 곧장 마음이 가지만, 네 사람이 누리던 평소의 하루는 아직 그립지 않다. 무엇을 잃는지 알기 전에 잃을 위험부터 크게 제시한 탓이다.
나는 가족이라는 설정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다. 그런데 이 부족한 가까움을 단숨에 넘어서는 순간이 있다. 수가 진통 중에도 우주선을 숨겨야 하는 장면이다.
출산 장면은 가족이라는 말을 몸으로 증명한다
나는 우주 추격과 출산이 겹칠 때 이 가족을 가장 지키고 싶었다. 수가 견뎌야 할 고통 앞에서는 가족이라는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았다.
수는 아기를 낳는 와중에도 우주선을 숨겨야 한다. 자기 몸을 돌보는 일과 모두를 보호하는 일이 동시에 닥친다. 위험이 끝날 때까지 출산을 미뤄둘 수도 없다.
바네사 커비는 이 두 일을 따로 연기하지 않는다. 고통을 견디는 몸과 물러서지 않는 태도가 한 사람 안에 붙어 있다. 수는 보호가 필요한 순간에도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인물이다.
나는 여기서 수가 강하다는 사실보다 쉴 수 없다는 사실에 더 마음이 쓰였다. 능력이 있다고 진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그 당연한 사실을 우주 추격 한가운데 놓아 절박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장면의 긴장은 적에게 들킬 위험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수가 지금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지 걱정하게 된다. 아이를 지킨다는 말이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일로 바뀐다.
페드로 파스칼이 맡은 리드는 답을 찾는 데 익숙한 천재다. 초반 임신 소식을 받아들이는 표정에는 아버지가 된다는 불안이 먼저 걸린다. 나는 그 반응 덕분에 그의 지식보다 막막함을 가까이 느꼈다.
다만 리드를 자꾸 흔들리는 쪽에 세우는 각본은 아쉽다. 걱정을 내려놓고 가족과 편하게 어울리는 매력까지 드러났다면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출산 장면의 절박함도 그런 평소 모습 뒤에서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수의 동생 조니는 불을 다루는 영웅이다. 조셉 퀸은 적의 말을 배우는 조니를 진지하게 연기한다. 돌 같은 몸의 벤을 맡은 에번 모스배크랙은 가족 곁을 지키는 부드러움으로 그 마음을 받친다.
누군가는 몸으로 버티고, 누군가는 답을 찾고, 누군가는 상대의 말을 듣는다. 이때 네 사람은 능력만 다른 영웅들이 아니라 서로에게 필요한 가족으로 다가온다. 나는 이들이 아이를 지키기를 바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를 잃지 않기를 바라게 됐다.
이 장면은 가족의 가까움을 설명보다 행동으로 전하는 데 성공한다. 다만 이렇게 강한 순간이 있는데도, 함께 사는 생활을 보여줄 시간이 짧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액션이 적어서가 아니라 함께 산 시간이 짧아서다
나는 화려한 싸움이 적어서 이 영화가 실패했다는 판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가족을 알아갈 시간이 부족하다는 비판에는 동의한다.
싸움을 늘린다고 네 사람이 더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함께 적을 공격하는 모습은 팀의 실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서로의 버릇까지 아는 가족이라는 믿음은 그것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조니가 택한 접근은 이 영화가 제대로 잡은 방향이다. 불을 다루는 그는 실버 서퍼의 언어와 과거를 알아내려 한다. 실버 서퍼는 갤럭투스의 도착을 알리는 존재다.
조니는 상대를 쓰러뜨릴 대상으로만 대하지 않는다. 무슨 일을 겪었으며 왜 갤럭투스를 따르는지 이해하려 한다. 가족을 지킬 방법을 힘겨루기 밖에서도 찾는 것이다.
나는 이 진지함이 좋다. 더 센 불을 뿜는 대신 상대가 어떤 말을 알아들을지 고민한다.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꼭 공격하는 동작으로만 드러날 필요는 없다.
다만 조니의 진지함이 가족 안에서까지 이어지면 아쉬워진다. 적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또렷한데, 누나와 편하게 부딪치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짧다. 인물의 책임감은 알겠지만 그와 함께 사는 재미는 덜 느껴진다.
벤도 비슷한 부담을 안는다. 곁을 지키는 따뜻함은 전해지지만, 그 따뜻함을 평소에 어떻게 주고받는지 볼 여유가 적다. 위기에서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생활 속 친밀함까지 대신한다.
종말의 위협이 빨리 시작한 결과다. 네 사람을 소개받자마자 이들이 세상을 구할 방법부터 걱정하게 된다. 가족 단체사진은 받았는데, 같이 밥 먹을 틈도 없이 비상연락망에 등록된다.
가족이 위험하다는 사실과 그 가족을 잃기 싫다는 감정 사이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시한 말다툼도 그 시간을 채운다. 누구에게만 말을 편하게 놓고 누구의 걱정에는 먼저 반응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순간이 있다면 협력하는 장면도 달라진다. 평소에는 맞지 않던 사람들이 지금은 서로를 믿는다는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가족의 힘은 늘 한마음이라는 데서만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 전투를 더 넣고 싶지 않다. 이미 출산과 추격이 겹치는 장면은 보호가 얼마나 절박한 일인지 충분히 보여줬다. 그 절박함 바깥에서 네 사람을 더 알고 싶었다.
필요했던 것은 전투 한 번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들만의 마찰이었다.
인크레더블과의 차이는 능력이 아니라 생활이다
《인크레더블》과 나란히 놓으면 이번 영화에 부족한 것이 분명해진다.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평범한 가족의 활력이다.
《인크레더블》은 초능력을 가진 부부와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영화다. 두 작품에는 복고풍 미래와 초능력 가족, 특별한 아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닮은 능력을 세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나는 두 가족 중 누구의 평소 하루가 더 궁금한지 묻게 된다. 위기가 없을 때도 함께 있고 싶은 사람들이어야, 위기가 왔을 때 헤어지지 않기를 더 간절히 바라게 된다. 내 대답은 《인크레더블》 쪽이다.
그 영화에서는 부부와 남매의 갈등이 가족을 알아가는 시간이 된다.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이 사소한 충돌을 없애지는 않는다. 오히려 부딪치는 모습을 보면서 각자가 가족 안에서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이번 영화는 그 단계를 서두른다. 가족을 지키겠다는 결심은 선명하지만, 그 가족 안에서 하루를 보내는 기분은 덜 전해진다. 나는 이들이 함께 싸우는 이유보다 함께 살면서 겪는 귀찮음도 알고 싶었다.
그렇다고 집과 도시를 꾸민 솜씨까지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이 영화의 복고풍 미래는 1960년대 사람들이 상상했던 미래다. 집에서 도시로, 다시 우주선으로 옮겨가도 같은 세계라는 감각이 이어진다.
이 통일감은 네 사람이 지키려는 세상을 구체적으로 만든다. 지구라는 커다란 말 대신 사람들이 살고 돌아갈 장소를 보게 한다.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 기대하는 분위기도 아이를 기다리는 이야기와 잘 맞는다.
집과 우주선의 취향은 통일됐는데, 가족끼리 말 붙일 시간은 부족하다.
바로 그 점이 아깝다. 이만큼 공들인 집이라면 가족이 그 안에서 서로를 귀찮게 하는 모습도 더 보고 싶다. 공간에 깃든 낙관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인크레더블》이 더 가까운 이유는 가족의 결점까지 함께 살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는 부모의 절박함으로 나를 붙잡지만, 네 사람의 생활까지 그만큼 가까이 내주지는 않는다. 문제는 일상만 서두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마지막에는 가족을 잃을 두려움까지 급하게 정리한다.
가족을 지키는 결말이 상실까지 서두른다
나는 함께 살 길을 끝까지 찾는 이 영화의 낙관을 지지한다. 하지만 마지막의 빠른 회복은 가족을 잃을 두려움마저 너무 서둘러 정리한다.
아기를 넘기면 지구를 살려주겠다는 요구부터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갤럭투스가 내민 조건이지, 가족이 지켜야 할 약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 사람이 그 거래를 거부하고 다른 답을 찾는 태도는 옳다.
나는 이들이 부모의 마음을 버려야만 영웅이 된다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아이를 지키려는 마음과 세상을 구하려는 책임을 끝까지 함께 붙든다. 어느 한쪽을 포기하는 일을 성숙함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이 고집은 영화가 꾸민 미래와도 잘 맞는다. 과학과 사람의 협력으로 아직 없는 답을 찾겠다는 믿음이다. 아이가 살아갈 내일을 기대하는 영화라면, 그 내일을 함께 만들려는 선택이 어울린다.
문제는 희망을 택한 데 있지 않다. 그 희망에 닿는 과정에서 느껴야 할 두려움을 너무 빨리 거둬간다는 데 있다. 여기서부터는 결말의 흐름을 다룬다. 미리 알고 싶지 않다면 다음 총평으로 건너뛰길 바란다.
마지막에는 막 생긴 상실의 무게를 느끼기도 전에 회복이 뒤따른다. 나는 인물들의 마음을 따라잡으려는데 영화는 벌써 다음 감정으로 넘어간다. 무엇을 잃을 뻔했는지 받아들일 틈이 짧다.
행복한 방향으로 끝나서 불만인 것이 아니다. 비극이 길어야 깊은 영화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되찾는 기쁨에는 잃을 수 있었다는 실감이 필요하다.
특히 이 영화는 출산 장면에서 몸이 감당하는 두려움을 정확히 보여줬다. 능력으로도 고통을 건너뛸 수 없다는 사실이 수를 가까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마지막에도 그만큼 감정을 견디는 시간이 필요했다.
앞에서는 가족의 평소 생활을 충분히 겪기 전에 위기가 왔다. 뒤에서는 위기가 남긴 마음을 충분히 느끼기 전에 회복이 온다. 서로 다른 대목에서 같은 서두름이 반복된다.
그래서 나는 이 가족을 지키려는 선택에는 찬성하면서도 충분히 함께 살았다는 느낌은 얻지 못했다.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은 충분히 전해졌다. 이제 필요했던 것은 이 네 사람이라서 더 지키고 싶은 마음이다.
부모의 절박함은 선명하고, 가족의 시간은 부족하다
내 별점은 5점 만점에 3.5점이다. 출산 장면과 수의 분투만으로도 극장에서 볼 값은 한다. 다만 마음을 붙잡은 것은 오래 함께한 네 사람의 친밀함보다 아이를 지키려는 부모의 절박함이었다. 가족이라는 말은 빨리 도착했고, 그 가족과 가까워지는 시간은 뒤처졌다.
출산과 우주 추격을 묶은 장면, 커비의 단호함, 집부터 우주선까지 이어지는 미래도시는 점수를 얻었다. 반면 가족의 일상을 쌓는 시간과 마지막 상실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모두 짧아 감점했다. 잘해낸 장면이 분명해서, 그 장면 사이의 서두름이 더 아깝다.
출산과 양육의 두려움을 영웅 이야기로 보고 싶다면 권한다. 수는 보호받아야 하는 순간에도 다른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 그 모순을 몸으로 버티는 커비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에는 자기 자리가 있다.
네 사람이 시시한 일로 다투고 웃는 가족극을 기대한다면 부족하다. 능력을 연달아 펼치는 싸움이 최우선인 관객에게도 먼저 권할 영화는 아니다. 이 작품이 가장 잘하는 일은 적을 때리는 쾌감보다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두려움을 전하는 것이다.
기존 영화의 속편이 아니므로 전작을 복습할 필요는 없다. 누가 더 센지보다 답을 모르는 순간 서로에게 무엇을 맡기는지 따라가면 좋다. 특히 조니가 상대의 말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전투 사이의 쉬는 시간으로 흘려보내지 말길 바란다.
이어서 볼 작품은 《인크레더블》이다. 같은 초능력 가족을 두고 생활 속 다툼과 유머가 위기 속 응원을 얼마나 키우는지 비교하기 좋다. 능력의 닮은꼴보다 함께 사는 모습을 보면 차이가 분명해진다.
나는 이 부모들을 응원했다. 다음에는 이 가족과 조금 더 오래 살고 싶다.
자주 묻는 질문 (FAQ)
기존 판타스틱 4 영화를 먼저 봐야 하나요?
전작을 복습할 필요는 없다. 기존 영화의 속편이 아니라 별도 세계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판타스틱 4다. 네 사람의 관계와 이번 위기는 이 영화 안에서 이해된다.
초능력을 얻는 과정을 다시 다루나요?
능력을 얻는 사고를 길게 되풀이하지 않고 영웅 활동 4주년에서 출발한다. 이야기의 중심은 영웅의 탄생보다 이미 가족인 사람들이 아기를 맞이하며 겪는 두려움이다.
액션을 기대하고 봐도 괜찮나요?
능력을 쉴 새 없이 펼치는 액션을 원한다면 우선 추천하지 않는다. 가장 강한 장면은 우주 추격과 출산이 겹치는 대목이다. 공격의 위력보다 보호의 절박함에 집중할 때 더 잘 맞는다.
가족 영화로는 어떤가요?
아이를 지키려는 부모의 마음은 강하게 전한다. 다만 네 사람이 평소에 다투고 웃으며 살아가는 시간은 짧다. 생활 속 유머가 풍부한 가족극보다 위기에 놓인 부모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편이 낫다.
쿠키 영상이 있나요?
있다. 이후 이야기로 이어지는 장면이므로 궁금하다면 본편이 끝나도 자리를 지키면 된다. 구체적인 등장인물은 모르고 보는 편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