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사평

존 윅 4(2023) 리뷰: 살아남는 솜씨보다 그 대가가 더 강하다

LUX · 2026년 11월 06일

존이 살아남으면, 그를 도와준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일까? 아니다. 나는 《존 윅 4》에서 존의 승리보다 친구들의 안전이 먼저 걱정될 때 이 영화가 더 좋아졌다.

존은 여러 범죄 조직 위에서 규칙과 처벌을 정하는 최고회의의 추격을 받는다. 그를 숨겨준 오사카 호텔은 공격받고, 지배인 코지와 딸 아키라도 싸움에 끌려든다. 존, 친구에게 안부보다 추격자가 먼저 도착하면 곤란하죠.

옛 친구 케인도 딸을 위협받아 존을 쫓으니, 적이 쓰러진다고 마음 놓고 기뻐하기 어렵다. 나는 오사카 전투에서 서로 다른 무기와 움직임을 즐기다가도, 이들이 지키려는 사람을 자꾸 떠올렸다. 존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의 앞을 막아선 사람에게도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

방탄 정장과 거듭되는 추락은 그 걱정을 무디게 만들고, 169분의 전투는 분명 길다. 그래도 이 영화는 존이 다음 총알을 피하는 일만큼, 그를 도운 사람이 다음 날을 맞는 일에도 내 마음을 쓰게 했다. 《존 윅 4》는 존이 얼마나 잘 죽이는지보다, 그가 살아남느라 누가 대가를 치르는지를 보여줄 때 더 강하다.

존이 살아남으면 모두에게 좋은 일인가

존의 생존은 친구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아니다. 나는 그를 돕는 일이 누군가의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는 순간부터 이 영화가 더 좋아졌다.

오사카 호텔 지배인 코지는 존을 숨겨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은신처의 위치가 아니라, 그곳에도 지켜야 할 일상이 있다는 사실이다. 코지에게는 딸 아키라가 있고, 그들이 함께 지키는 호텔이 있다.

존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몸을 피할 장소다. 하지만 그를 받아준 사람들은 그 잠깐의 호의 때문에 자기 삶을 걸어야 한다. 영화는 친구를 돕는 선택을 멋진 의리로만 포장하지 않는다.

호텔이 공격받으면 존의 도주는 코지와 아키라의 싸움이 된다. 존이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만으로는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해결할 수 없다. 나는 그 차이 때문에 존을 응원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존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영화도 아니다. 공격을 명령하고, 우정을 약점으로 이용하는 쪽은 최고회의다. 다만 악당에게 잘못이 있다는 설명으로 친구들이 치르는 값을 지워주지는 않는다.

이 점은 케인에게서 더 또렷해진다. 은퇴한 암살자인 그는 딸을 위협받아 옛 친구 존을 쫓는다. 존에게는 자신을 죽이려는 적이지만, 딸에게 돌아가려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케인이 등장할 때 단순히 강한 상대가 왔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존을 살리고 싶은 마음과 케인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부딪쳤다. 어느 쪽이 쓰러져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쁜 소식이다.

보통 추격전에서는 주인공을 가로막는 사람이 줄어들수록 속이 시원하다. 여기서는 그렇게 셈하기 어렵다. 상대에게도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높이 사는 것은 바로 이 불편함이다. 영화는 존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시키면서도, 그의 사정만 중요하다고 밀어붙이지 않는다. 오래된 친구라는 말이 싸움을 멈추게 하지 못해서 더 아프다.

의리를 택한 코지와 협박에 끌려온 케인은 서로 다른 자리에 선다. 하지만 둘 다 존과 얽힌 관계 때문에 자신이 지키려던 것을 잃을 위험에 놓인다. 존의 탈출은 그들에게 결코 공짜가 아니다.

오사카 전투가 좋은 이유는 이 사정을 싸우는 동작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사카에서는 적에게도 지킬 사람이 있다

오사카 전투는 싸우는 방식을 나눠 각자가 지키려는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나는 누가 이길지보다 누가 무엇을 잃을지에 더 신경을 썼다.

존과 케인, 코지와 아키라가 같은 공간에서 싸운다. 하지만 이들을 모두 존의 편과 반대편으로 나누면 장면의 재미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같은 싸움에 들어왔어도 여기서 나가려는 이유는 서로 다르다.

존은 추격에서 벗어나야 하고, 코지와 아키라는 호텔을 지켜야 한다. 케인은 딸에게 닥칠 위협 때문에 친구를 겨눈다. 영화는 이 사정을 설명한 뒤 잊어버리지 않고, 서로 다른 무기와 움직임으로 계속 되살린다.

특히 코지와 아키라를 함께 놓은 선택이 좋다. 두 사람에게 호텔은 존을 잠시 숨겨주는 장소로 끝나지 않는다. 아버지와 딸이 함께 지키는 곳이 공격받으니, 존의 탈출만 성공하면 된다고 바라기 어렵다.

아키라가 공격적으로 맞서는 모습도 그 차이를 분명히 한다. 그녀는 존의 싸움을 구경하거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직접 몸을 던지는 사람이다.

반대편의 케인에게도 돌아갈 곳이 있다. 그가 코지와 맞서면 친구를 지키려는 의리와 딸을 지키려는 절박함이 충돌한다. 나는 어느 쪽의 공격이 성공해도 마냥 반갑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투가 사정 설명에 눌려 처지지는 않는다. 케인은 오사카에서 감지 장치를 활용해 싸운다. 상대의 움직임을 알아내는 방법 자체가 공격의 재미를 만든다.

침입 감지 장치가 방범을 그만두고 공격 업무를 맡았다.

이 대목에서는 나도 웃음이 났다. 그런데 웃고 나면 케인이 얼마나 위험한 상대인지 더 선명해진다.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라고 해서 존을 덜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장면이 적을 불쌍하게 만들어 긴장을 낮추지 않아서 좋다. 케인이 강할수록 존이 걱정되고, 그의 사정을 알수록 쉽게 쓰러지기를 바라지도 못한다. 싸움을 즐기는 마음과 싸움이 멈추기를 바라는 마음이 함께 간다.

액션이 인물의 사정을 잠깐 잊게 하는 휴식 시간이 아닌 셈이다. 오히려 누가 누구를 위해 싸우는지 몸의 움직임으로 다시 읽게 한다. 그리고 이 차이를 장면의 아이디어로 끝내지 않는 힘은 배우들의 몸에서 나온다.

리브스의 피로와 사와야마의 분노가 함께 필요하다

나는 지친 존에게 마음을 주면서도 아키라의 분노를 덮지 않는 연기가 좋다. 리브스가 살아남고 싶은 사람을 맡는다면, 사와야마는 그 생존 때문에 다친 사람의 자리를 지킨다.

키아누 리브스는 짧은 말과 무거운 몸짓으로 존의 피로를 드러낸다. 특히 옛 친구 케인과 대치할 때는 상대를 없애려는 마음만 앞세우지 않는다. 적을 경계하는 눈에 오래된 친분이 겹치니, 이겨도 기뻐하기 어려운 싸움이 된다.

리나 사와야마는 오사카 호텔을 지키는 아키라의 공격적인 움직임부터 또렷하게 새긴다. 아버지 코지를 잃은 뒤의 분노도 존이 얼마나 힘든지 설명하는 데 쓰이지 않는다. 단독 여주인공은 아니지만, 존의 사정으로 밀어낼 수 없는 사람이다.

두 연기를 함께 놓으면 내가 누구 편인지도 간단히 정리되지 않는다. 존이 지쳤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키라에게 그를 이해하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 아키라가 화를 낸다고 해서 존에게 쏟았던 마음을 거둘 수도 없다.

나는 이 불편함이 배우들의 가장 큰 성과라고 본다. 존의 피로만 강조했다면 주변 사람의 피해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사건으로 줄었을 것이다. 아키라의 분노만 앞섰다면 존이 버티는 모습에 마음을 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서는 두 감정이 서로를 지우지 않는다. 지쳤으니 쉬고 싶다는 마음과, 당신 때문에 내 삶이 무너졌다는 마음이 함께 남는다. 누가 더 불쌍한지 순위를 정하지 않아서 싸움이 끝난 뒤의 관계까지 걱정하게 된다.

견자단은 느긋하게 굴다가 순식간에 공격한다. 딸을 걱정하는 사정에 마음이 기울어도, 저 속도를 보면 존부터 걱정된다.

빌 스카스가드가 맡은 그라몽 후작은 최고회의의 명령권을 쥔 인물이다. 자신은 싸우지 않고 남을 시키는 태도가 얄밉다. 친구끼리 총을 겨누는데 정작 명령한 사람은 몸을 아낀다.

후작이 케인의 딸을 협박하는 장면에서는 그 차이가 더 선명하다. 명령을 내리는 쪽과 그 명령 때문에 친구를 겨눠야 하는 쪽의 무게가 다르다. 나는 존의 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케인을 후작과 같은 자리에 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배우들이 이렇게 고통을 전해도, 총격과 추락을 견딘 몸이 너무 멀쩡하면 그 무게가 줄지 않는가?

안 죽어서 지루하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부상을 가볍게 처리해서 긴장이 줄어든다는 비판에는 동의한다. 다만 존이 버틴다고 주변 사람들까지 무사한 것은 아니다.

방탄 정장은 총알을 막지만, 반복되는 추락까지 납득시키지는 못한다. 크게 떨어진 뒤에도 전투가 이어지면 다음 충돌을 보는 마음부터 느슨해진다. 이번에는 얼마나 다칠까보다 언제 다시 일어날까를 기다리게 된다.

정장은 방탄인데, 영화는 추락 보상까지 가입해 놓았다.

과장된 액션이니 그냥 즐기라는 말로 넘기기에는 아쉽다. 영화가 존의 지친 몸을 강조한 만큼, 충격도 몸에 남아야 한다. 힘겹게 움직이는 연기와 다시 싸울 수 있는 몸 사이에 간격이 벌어진다.

나는 존이 쉽게 죽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버틸 때마다 무엇을 더 잃는지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문제다. 다음 싸움의 조건이 달라지지 않으면 앞선 고통도 가벼워진다.

169분이라는 길이는 그 약점을 키운다. 존의 피로를 따라가다가 내 피로가 먼저 느껴지는 구간도 있었다. 총격이 끝나도 또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반가움보다 부담으로 다가왔다.

다만 여기서 영화 전체가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고 말하면 틀린다. 존의 몸에 남는 상처와 그 때문에 남의 삶에 생긴 상처는 다르다. 전자는 흐릿해져도 후자는 오사카에서 분명하게 남는다.

호텔이 공격받았다는 사실은 존이 다시 일어선다고 취소되지 않는다. 코지와 아키라가 지키려던 곳은 이미 싸움터가 됐다. 존의 생존이 그들에게도 승리였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케인의 처지도 방탄 정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총알을 막아도 딸을 볼모로 친구를 죽여야 하는 선택은 그대로다. 그가 강하게 싸울수록 나는 그를 쓰러뜨리는 일만 바라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나는 위험이 사라졌다는 비판에는 절반만 동의한다. 존이 다음 공격을 견딜지는 덜 걱정해도, 그를 돕는 사람이 무엇을 잃을지는 계속 걱정했다. 이 영화는 몸의 고통을 깎으면서도 관계의 고통까지 지우지는 않는다.

내가 더 짧은 전투를 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존이 버티는 모습을 거듭 보여주기보다, 그 곁에 남은 사람에게 마음 쓸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렇다면 이 속편은 첫 영화의 복수에서 얼마나 멀리 왔는가?

첫 편이 복수할 이유였다면 이번에는 멈출 이유다

《존 윅》이 복수를 응원하게 했다면, 4편은 그 복수 때문에 다친 사람을 보게 한다. 다만 존이 벗어날 길을 조직의 옛 결투 규칙에서 찾는 선택은 지나치게 편리하다.

1편에서 존은 아내가 남긴 개를 잃고 다시 총을 든다. 그 개는 먼저 떠난 아내와 이어진 존재라서, 나는 존이 분노하는 이유를 곧바로 받아들였다. 싸움을 시작하는 마음을 이해하는 데 긴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4편은 그렇게 시작한 싸움이 어디까지 번졌는지 묻는다. 존을 숨겨준 친구가 위험해지고, 그 친구의 딸도 무기를 들어야 한다. 이제 존에게 잃은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싸움을 응원하기는 어렵다.

1편에서는 존이 복수에 성공하기를 바랐다. 나는 여전히 그가 살아남기를 바란다. 다만 이번에는 그 바람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안전을 뒤로 미루고 있지 않은지 자꾸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후반에 결투를 내세우는 방향 자체는 좋다. 끝없이 몰려오는 상대를 모두 없애는 일과, 싸움에서 벗어나는 일을 구별하기 때문이다. 더 많이 죽이는 솜씨만으로는 존이 원하는 삶에 도착하지 못한다.

거대한 추격 뒤에 움직임을 줄이는 선택도 정확하다. 영화는 달리고 쏘는 속도 대신 기다림과 판단에 집중한다. 나는 이때 존이 얼마나 빠르게 쏠지보다 무엇을 위해 총을 드는지에 더 신경을 썼다.

아쉬운 것은 그 길을 열어주는 규칙이다. 최고회의는 도시를 건너 사람을 쫓고, 가족을 협박할 만큼 거대한 권력을 휘두른다. 그런데 오래된 결투 절차가 출구로 등장하면 그 힘에 비해 해결 방법이 너무 단정하다.

정해진 규칙이니 설명은 된다. 하지만 설명이 된다고 충분히 설득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조직의 힘을 피해 여기까지 온 존에게, 그 조직이 마련한 절차가 답이 되는 대목에서 걸렸다.

그래도 결투의 결과만 기다리게 만드는 영화는 아니다.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누가 떠밀렸고 누가 다쳤는지를 기억하게 한다. 존이 벗어날 가능성과 주변 사람의 상처를 같은 문제로 처리하지 않는 점은 끝까지 좋다.

총평: 존이 버틴 자리에는 남의 상처도 남는다

내 별점은 5점 만점에 4점이다. 169분을 쓸 가치가 있다. 존을 응원하는 마음은 지켜주되, 그를 도운 사람들이 치르는 값을 잊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존이 얼마나 잘 죽이는지보다, 그가 살아남느라 누가 다치는지를 보여줄 때 더 강하다.

오사카의 서로 다른 전투 방식과 배우들의 몸짓은 그 대가를 또렷하게 만든다. 다만 169분 동안 반복되는 싸움과 가볍게 처리되는 부상 때문에 만점에서는 한 걸음 물러선다. 지친 몸을 믿고 싶은데, 추락 뒤의 회복이 자꾸 그 믿음을 깎는다.

긴 전투에서도 사람의 위치와 움직임을 따라가는 재미를 좋아한다면 시간을 쓸 가치가 있다. 친구끼리 싸워야 하는 사정까지 보고 싶은 관객에게는 더 권한다. 반대로 총상과 추락의 결과를 엄격하게 따지거나 짧고 빠른 전개를 원한다면 피하는 편이 낫다.

볼 때는 쓰러진 적의 숫자보다 각자가 지키려는 사람을 따라가면 좋다. 오사카에서는 네 인물의 움직임 차이를, 파리에서는 차와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길을 보길 권한다. 같은 총격도 누군가에게 돌아가려는 싸움으로 읽으면 달라진다.

이어서 《존 윅》을 보면 복수를 시작할 이유가 멈출 이유로 바뀐 차이가 또렷하다. 《존 윅 3: 파라벨룸》과 나란히 놓으면 살아남는 일과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도 드러난다. 이번 영화는 상대를 더 많이 쓰러뜨리는 일이 곧 해결이라는 믿음에서 물러난다.

존이 버틴다는 사실만으로 주변 사람들까지 구원받지는 않는다. 나는 존이 버티는 솜씨보다, 그 곁의 사람들이 치르는 값을 보여준 이 속편을 높이 산다.

★★★★☆ (4/5) — 존이 버티는 솜씨보다 곁의 사람들이 치르는 값이 더 강하다

자주 묻는 질문 (FAQ)

《존 윅 4》는 전편을 안 보고 봐도 되나요?

액션의 움직임은 따라가기 쉽지만, 존과 친구들이 왜 이런 처지에 놓였는지는 전편을 알아야 더 잘 느껴진다. 처음이라면 1편부터 순서대로 보는 쪽을 권한다. 특히 3편의 추격과 생존이 이번 이야기로 이어진다.

《존 윅 4》의 상영 시간은 얼마인가요?

169분이다. 긴 전투를 충분히 즐기는 영화지만, 싸움이 반복되면서 피로가 앞서는 구간도 있다. 짧고 빠르게 끝나는 액션을 원한다면 맞지 않는다.

실화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가요?

실화나 별도 소설을 옮긴 작품이 아니라 영화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다. 현실적인 암살 작전보다는 과장된 액션과 친구 사이의 의리를 중심에 놓고 보는 편이 좋다.

《존 윅 4》에 쿠키 영상이 있나요?

엔딩 크레딧 뒤에 쿠키 영상이 있다.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장면이므로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보길 권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 채 보는 편이 좋다.

액션을 더 재미있게 보는 방법이 있나요?

적이 몇 명 쓰러지는지보다 각자가 누구를 지키려고 싸우는지 따라가면 좋다. 오사카에서는 인물마다 다른 무기와 움직임을 보길 권한다. 파리에서는 총격뿐 아니라 차와 사람이 움직이는 길을 함께 보면 장면의 재미가 커진다.

김지훈 기자
ALJIstory 편집장

보이지 않는 이면의 진실을 파고드는 심층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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