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사평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2023) 리뷰: 폭탄은 무겁고 가족의 위기는 가볍다

LUX · 2026년 11월 06일

나는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의 추격에는 신이 났고, 가족의 위기에는 덜 긴장했다. 차가 부서질 때는 몸에 힘이 들어가는데, 사람이 사라질 위기에는 오히려 느긋해졌다. 나는 자동차가 벌이는 소동은 즐겼지만, 그 안에 탄 사람을 잃을까 끝까지 두렵지는 않았다.

돔은 가족을 지키는 아버지이고, 단테는 돔 일행에게 아버지를 잃은 복수자다. 단테가 로마에 벌여 놓은 함정에서 돔이 거대한 폭탄을 강으로 밀어낼 때는 나도 몸에 힘이 들어갔다. 폭탄 처리 절차에 자동차로 밀기가 들어갔다. 일단 효과는 있다.

이 장면은 누가 누구와 어떤 사이인지 몰라도, 당장 무엇을 막아야 하는지 또렷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폭탄이 무섭다는 것과 가족을 잃을까 무섭다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일이다. 앞의 감정은 폭발의 크기로 만들지만, 뒤의 감정은 한번 잃으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내가 묻고 싶은 건 하나다. 이 영화는 가족을 정말 잃을지도 모른다고 믿게 만드는가? 큰 사고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인물들이 그 사고 뒤에 무엇을 감당하는지까지 보여줘야 한다. 이 영화는 가족을 잃을 공포를 팔면서, 이별을 뒤집고 위기의 답을 미뤄 긴장을 깎는다.

팝콘은 맛있다, 그래서 위험까지 믿지는 않는다

나는 로마 추격을 이 영화가 확실히 잘한 장면으로 꼽는다. 다만 쫓기는 순간의 흥분이 가족을 잃을 두려움으로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로마에서 단테는 가짜 임무로 돔의 동료들을 함정에 빠뜨린다. 이들을 폭탄 테러범으로 몰아붙이면서, 사람을 구해야 할 이들이 쫓기는 처지가 된다. 돔에게는 누명을 따질 여유조차 없다.

여기서 영화가 잘한 선택은 당장 해결할 일을 하나로 좁힌 것이다. 굴러가는 거대한 폭탄을 막아야 한다. 복수의 사연을 잠깐 놓쳐도 그 목표만큼은 놓치기 어렵다.

추격을 보는 동안 관객이 알아야 할 것도 분명하다. 폭탄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돔이 그것을 어디로 보내려는지 따라가면 된다. 등장인물의 지난 관계를 외우지 않아도 눈앞의 위험은 읽힌다.

자동차가 빠르다는 사실만 보여줬다면 이 장면은 금세 지쳤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차를 움직일 때마다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목적이 붙는다. 속도를 내는 행동에 이유가 생기니, 과장된 움직임도 구경할 맛이 난다.

특히 폭탄을 강으로 밀어 피해를 줄이는 선택은 명쾌하다. 돔의 운전 실력이 단순한 자랑에서 사람을 구하는 행동으로 바뀐다. 가족을 지킨다는 주인공이 가족 바깥의 피해도 막으려 한다는 점 역시 좋다.

그래서 이 대목의 재미를 황당하다는 말로 지워버리는 데는 반대한다. 사실처럼 가능하냐고 묻기 전에, 무엇을 하려는 장면인지부터 따져야 한다. 로마 추격은 그 질문에 막힘없이 답한다.

문제는 장면이 끝난 뒤에도 남아야 할 걱정이다. 폭탄이 터질까 조마조마한 감정과 돔의 가족이 사라질까 두려운 감정은 다르다. 전자는 당장의 움직임을 따라가지만, 후자는 지금까지 인물을 대해 온 방식을 믿어야 생긴다.

아무리 큰 폭발을 앞에 놓아도 그 믿음을 대신 만들지는 못한다. 위험의 크기를 계속 키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고 이후에도 인물의 삶이 달라질 거라는 무게가 필요하다.

나는 로마에서의 솜씨를 인정하면서도, 그것만으로 가족의 위협까지 믿어주지는 않는다. 폭탄의 위력은 충분히 전해졌다. 그렇다면 그 폭탄 앞에 선 사람들도 그만큼 잃고 싶지 않은가?

배우들은 지킬 사람을 만든다

배우들은 가족이라는 말을 지키고 싶은 사람 사이의 관계로 바꾼다. 다만 그 사람들이 서로를 잃을까 두려워하게 만드는 힘은 고르지 않다.

돔을 연기한 빈 디젤은 아들을 구하려는 대목에서 보호자의 절박함을 붙든다. 낮게 누르는 목소리와 굳은 표정에는 아이를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가 실린다. 적을 이기는 일보다 아들을 놓치지 않는 일이 먼저라는 점은 분명히 전해진다.

나는 이 단단함이 돔에게 필요하다고 본다. 가족의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허둥대면, 동료들이 그를 믿는 이유도 약해진다. 디젤은 적어도 아이가 기대고 싶은 아버지의 무게를 지킨다.

하지만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무너질 때도 표정과 말투의 변화는 좁다. 힘으로 버티는 아버지는 선명한데, 자기 힘이 부족할까 겁먹는 아버지는 덜 선명하다. 단테가 통제권을 빼앗아도 돔의 반응은 익숙한 범위에 머문다.

돔의 동반자 레티를 맡은 미셸 로드리게즈는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지킨다. 붙잡힌 레티가 원수 사이퍼와 맞붙을 때, 몸을 밀어붙이는 동작에는 살아남겠다는 고집이 있다. 누군가 구해주기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라서 나는 더 응원하게 됐다.

그 격투는 레티를 돔이 잃을지도 모르는 아내로만 두지 않는다. 레티에게도 자기 몸으로 빠져나가야 할 위험이 있다. 가족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돌아가려는 의지는 충분히 읽힌다.

아쉬운 건 두 사람이 떨어진 채 보내는 이야기다. 각자 버티는 힘은 보여주지만, 서로의 부재를 두려워하는 감정을 나눌 시간은 줄어든다. 지켜야 할 관계를 알면서도 그 관계가 끊어질 공포까지 깊이 느끼기는 어렵다.

복수자 단테를 맡은 제이슨 모모아는 로마의 함정을 즐기는 과장된 말투로 돔의 진지함을 흔든다. 가족의 운명을 건 장엄한 대결이다. 단테만 신났다.

조카를 보호하는 제이콥 역의 존 시나는 편안한 삼촌의 태도로, 아이를 지킬 이유부터 납득시킨다. 거창한 다짐보다 함께 피하는 동안의 친근함이 두 사람을 걱정하게 만든다.

그러니 배우들이 지킬 사람을 만드는 데 실패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위험에 빠져도 내 마음 한쪽은 여전히 느긋한가?

문제는 자동차가 아니라 잃을 게 없다는 믿음이다

나는 자동차 액션이 황당해서 문제라는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이 위험해도 정말 잃을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비판에는 동의한다.

둘은 다른 문제다. 자동차가 불가능한 움직임을 해도, 그 안의 사람이 다칠까 걱정하며 보는 일은 가능하다. 움직임이 현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인물의 두려움까지 가짜가 되지는 않는다.

로마의 폭탄 추격이 그 증거다. 거대한 폭탄을 자동차로 막는 상황은 터무니없지만, 막지 못하면 사람들이 다친다는 목표는 또렷하다. 나는 그 장면에서 실제 운전으로 가능한지 따지느라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쪽은 오히려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다. 이 시리즈는 과거의 상실을 뒤집어 인물을 다시 등장시킨다. 반가움은 생기지만, 앞으로 누가 위험해져도 끝이라고 믿기 어려워진다.

누가 어떻게 돌아오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라, 앞서 슬퍼했던 시간이 나중에도 그대로 남느냐다. 떠난 줄 알았던 사람이 돌아오면 남겨진 사람의 슬픔도 다시 설명해야 한다.

귀환 자체를 금지하자는 말은 아니다. 살아남은 이유와 그동안의 빈자리를 충분히 다루면, 돌아온 사람에게도 새로운 무게가 생긴다. 그런데 놀라게 하는 등장만 앞서면 지난 이별은 잠깐의 착각으로 줄어든다.

자동차의 안전검사보다 급한 건, 이 세계에서 이별이 유효한지 확인하는 일이다.

그렇게 한번 느슨해진 믿음은 다음 추격에도 따라온다. 인물이 위험에 빠질 때 나는 그의 고통보다 영화가 빠져나갈 방법부터 떠올리게 된다. 걱정해야 할 자리에서 설명을 기다리는 셈이다.

가족을 강조할수록 이 빈틈은 더 커진다. 소중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해서, 잃을 가능성까지 저절로 믿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킨다는 약속에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 더 엄격하게 보게 된다.

나는 이 인물들이 불행해져야 좋은 영화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모두 살아남더라도 겪은 위험 때문에 관계나 선택이 달라지면 된다. 다만 위기를 넘긴 뒤에도 모든 것이 그대로라면, 다음 위협은 전보다 덜 무섭다.

배우들이 애써 지킬 사람을 만들어도, 영화가 상실을 가볍게 되돌리면 그 노력이 약해진다. 그리고 이 약점은 아버지를 잃었다는 이유로 찾아온 새 악당, 단테의 출발점과 부딪칠 때 더 커진다.

남의 상실로 시작하고 우리 편의 위기만 키운다

《언리미티드》의 승리를 단테의 상실로 뒤집은 출발은 좋다. 하지만 영화는 돔이 돌아볼 일보다 단테가 벌일 복수에 더 관심을 쏟는다.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에서 리우의 금고 탈취는 돔 일행의 통쾌한 성공이었다. 이번 영화는 그 사건으로 아버지와 재산을 잃은 단테를 앞세운다. 이쪽이 함께 기뻐한 순간이 저쪽에는 가족을 잃은 날이었다.

나는 같은 사건을 반대편에서 다시 여는 이 선택을 높이 산다. 가족을 지켜온 주인공에게 다른 가족의 상실을 들이미는 까닭이다. 돔의 가족만 소중한지 묻는 적은, 힘만 센 적보다 그를 깊이 흔든다.

물론 단테의 아버지는 범죄조직의 보스였다. 그의 죽음이 곧 돔의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래도 정당한 싸움에서 이긴 사람에게 아무 책임도 남지 않는지는 물을 만하다.

여기서 책임은 돔에게 무조건 사과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자신이 끝났다고 여긴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가족을 지킨 승리 뒤에 무엇이 남았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단테는 점점 남의 고통을 즐기는 악당으로 커진다. 로마의 함정도 아버지를 잃은 슬픔보다 상대를 괴롭히는 즐거움을 앞세운다. 모모아의 장난기는 장면을 살리지만, 복수를 시작한 상처는 뒤로 밀린다.

단테가 잔인하다는 이유로 돔의 과거까지 따질 필요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그 문제를 붙들기보다 다음 함정을 준비한다. 나는 돔이 무엇을 깨달을지보다 누구를 먼저 구하러 갈지 따라가게 됐다.

이 차이는 가족을 잃을 공포에도 영향을 준다. 단테의 상실이 지금의 그를 어떻게 바꿨는지 깊이 느껴야, 돔에게 닥칠 상실도 무섭다. 그런데 잃은 가족은 복수의 이유로만 쓰이고, 눈앞의 위기만 계속 커진다.

결국 단테에게는 이미 가족을 잃은 과거를 주고, 돔에게는 잃을지도 모르는 현재를 준다. 둘을 맞세운 만큼, 지킨 사람과 잃은 사람의 차이를 더 오래 다뤘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번 한 편 안에서라도 가족을 지킨다는 말의 대가를 치르는가?

141분을 달리고도 대가는 다음 편으로 넘긴다

가장 위험한 순간에 멈춘다고 가족을 잃을 공포가 더 커지지는 않는다. 나는 이 끝맺음이 걱정을 키우기보다, 이번 한 편에서 받아야 할 답을 빼앗았다고 본다.

구체적인 결말은 밝히지 않겠다. 다만 여러 인물이 각자의 위기에 놓인 채, 그 결과를 충분히 보여주지 않고 끝난다. 단테의 복수도 돔의 대응도 이번 영화 안에서는 답을 얻지 못한다.

물론 다음 이야기를 남기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적을 완전히 물리치지 않아도 한 편의 이야기는 끝낼 수 있다. 이번 싸움에서 무엇을 지켰고 무엇을 잃었는지만 분명하면 된다.

이번 편에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치르는 희생은 있다. 하지만 여러 인물의 생사를 한꺼번에 미루면서, 그 희생을 슬퍼할 시간마저 밀어낸다. 인물들이 위험을 겪은 뒤 어떻게 달라지는지 볼 시간도 부족하다. 가족을 지킨다는 말에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 관객은 또 기다려야 한다.

나는 누가 살아남는지 알아야만 만족하는 관객은 아니다. 결과를 숨겨도 돔이 이전과 다른 아버지가 됐다는 확신은 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변화보다 당장 빠져나가야 할 위기가 마지막까지 앞선다.

가족의 운명을 걸고 도시를 흔들며 달려왔다. 답은 다음 편이다.

141분은 인물에게 마음을 줄 만큼 긴 시간이다. 함께 달린 관객에게 모든 문제의 해결까지 줄 필요는 없다. 그래도 이번에 견딘 시간이 어디에 닿았는지는 보여줘야 한다.

특히 이미 상실의 무게를 의심하게 만든 영화라면 더 그렇다. 끝에 남겨진 위험만으로는 그 의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다음 편이 시작되면 또 빠져나갈 길이 생기리라는 생각부터 든다.

그래서 마지막에 내가 기다린 것은 더 큰 사고가 아니었다. 돔이 가족을 지키며 무엇을 감당했는지 보여주는 짧은 순간이었다. 영화는 그 순간보다 다음 위협을 고른다.

단테가 원하는 고통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돔에게 그것이 어떻게 남는지는 충분히 보지 못한다. 위협을 던지는 쪽은 신났는데, 받아낸 쪽의 삶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이건 단순히 뒷이야기가 궁금한 상태와 다르다. 이번 이야기를 끝까지 받지 못했다는 허전함이다. 내가 가족의 안부보다 다음 편의 설명부터 기다리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니 추격의 쾌감을 원하는 사람과 한 편의 끝맺음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제 서로 다른 추천을 해야 한다.

자동차의 비행은 믿어도, 가족의 위기는 못 믿겠다

나는 이 영화가 자동차를 너무 멀리 날려서 실망한 게 아니다. 가족을 잃을 공포를 앞세우면서, 정작 상실을 감당하는 일은 자꾸 피해서 실망했다. 사람을 지킨다는 말은 뜨거운데, 그 사람을 정말 잃을 수 있다는 믿음은 차갑게 식는다.

로마 추격은 목표가 명확하고, 모모아의 장난기는 굳어 있던 대결을 흔든다. 내 별점은 5점 만점에 2.5점이다. 로마 추격과 단테는 즐겁지만, 이별을 못 믿게 만들고 끝맺음까지 미룬 값은 크다. 배우들이 만든 관계를 영화가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

거대한 자동차 추격을 좋아하고 단테의 과장된 태도가 즐겁다면, 이번에도 달릴 이유는 있다. 이야기가 다음 편으로 이어져도 괜찮은 시리즈 팬에게는 특히 그렇다. 다만 141분 안에 이번 갈등의 답을 받고 싶다면 나는 권하지 않는다.

가족의 희생과 이별을 무겁게 다루는 이야기를 기대해도 실망한다. 위험에 빠진 사람은 많은데, 그 위험이 삶에 무엇을 남겼는지는 충분히 보여주지 않는다. 이 영화가 잘하는 것은 위기의 확대이지, 그 뒤를 살아가는 사람의 설명이 아니다.

볼 때는 로마에서 폭탄을 어디로 보내려는지 따라가면 편하다. 돔의 진지함과 단테의 장난기가 부딪치는 순간에도 집중해 보길 바란다. 영화가 가장 생생하게 움직이는 곳은 복잡한 관계 설명보다 그 두 사람의 온도 차다.

이어서 볼 작품은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다. 같은 리우 금고 사건을 승리한 팀과 잃은 가족의 자리에서 비교하면, 이번 영화가 꺼내고도 충분히 밀지 못한 질문이 선명해진다.

나는 자동차가 하늘을 나는 건 받아들인다. 가족을 잃을 공포까지 가벼워지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 (2.5/5) — 폭탄은 무겁지만 가족을 잃을 공포는 가볍다.

자주 묻는 질문 (FAQ)

전작을 안 봐도 이해할 수 있나요?

로마 폭탄 추격처럼 당장의 목표가 분명한 액션은 쉽게 따라간다. 다만 복수의 출발점과 인물 관계를 이해하려면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를 먼저 보는 편이 좋다.

실화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가요?

실화나 별도 문학 원작을 각색한 영화가 아니다. 시리즈의 과거 사건을 새로운 복수극으로 연결한 이야기이며, 본편 기준 열 번째 작품이다.

이번 영화만으로 이야기가 끝나나요?

아니다. 여러 인물의 위기를 해결하지 않은 채 다음 이야기로 넘긴다. 한 편 안에서 갈등의 답을 받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아쉬움이 크다.

제이슨 모모아의 악당은 어떤 매력이 있나요?

단테는 위협을 무겁게 선언하기보다 상대가 곤란해지는 상황을 즐긴다. 그 장난스러운 태도가 진지한 돔과 부딪치며 장면을 살린다. 다만 재미가 커질수록 가족을 잃은 복수자의 상처는 뒤로 밀린다.

어떤 관객에게 추천하나요?

거대한 자동차 추격과 과장된 악당을 즐기는 시리즈 팬에게 맞는다. 가족의 상실을 깊게 다루거나 끝맺음이 분명한 이야기를 원한다면 권하지 않는다. 액션에서는 복잡한 관계보다 인물들이 당장 무엇을 막으려는지 따라가면 편하다.

김지훈 기자
ALJIstory 편집장

보이지 않는 이면의 진실을 파고드는 심층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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