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책임 회피”라는 비판은 마일스의 선택까지 미완성으로 취급하는 순간 틀린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사건을 끝내지 않았지만, 주인공이 누구의 뜻대로 살지는 분명히 정한다. 선배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소년은 이제 그들의 허락 없이 아버지를 구하려 한다.
전작 《뉴 유니버스》에서 마일스가 넘어야 했던 것은 자신도 영웅이 될 수 있느냐는 의심이었다. 이번에는 먼저 영웅이 된 사람들이 그의 앞을 막고, 지켜야 할 비극이 있다고 가르친다. 영웅이 되는 데 합격했더니, 이번에는 선배들이 남은 인생의 시간표까지 나눠 준다.
나는 영웅들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을 좋아하지만, 여기서는 그들이 늘어날수록 마일스 편에 더 붙었다. 사람을 구하려는 소년을 사람들이 함께 막는다면, 익숙한 가면부터 잠시 의심해야 한다. 다만 140분 동안 응원하고 나니, 결심 다음의 행동까지 보고 싶었다.
나는 선배들이 강요한 비극에 맞선 이 영화가 훌륭하지만, 그 반항의 결과까지 다음 편에 넘긴 점은 아쉽다.
끝나지 않았다고 아무것도 이루지 않은 건 아니다
이 영화의 사건은 미완성이지만, 마일스의 결심까지 미완성은 아니다. 나는 둘을 구분해야 이 속편이 해낸 일과 미룬 일을 정확히 따질 수 있다고 본다.
마일스는 부모 몰래 스파이더맨으로 활동하는 소년이다. 다른 세계에서 온 친구 그웬을 따라가면서, 자신과 같은 영웅들이 모인 조직을 만난다. 혼자 감당하던 일을 이해해 줄 동료들이 생긴 셈이다.
그런 소년에게 선배들의 인정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이해해 주는 범위에는 조건이 붙는다.
조직의 지도자 미겔은 세계를 지키려면 정해진 희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일스에게는 아버지를 잃는 일도 그 희생에 포함된다. 동료가 되는 대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잔인한 요구다.
여기서 마일스의 목표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이들에게 자신도 어엿한 영웅이라고 인정받고 싶었다. 이제는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아버지를 구하려 한다.
이 차이는 크다. 칭찬을 받으면서 사람을 구하는 일과, 존경하던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구하는 일은 다르다. 후자를 택하는 순간에는 자신이 틀릴 위험도 떠안아야 한다.
전작 《뉴 유니버스》에서는 선배들의 도움이 마일스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번에는 그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선배들의 판단까지 따라야 하는지 묻는다. 고마움을 느끼는 것과 자기 삶을 맡기는 것은 별개다.
그래서 이번 반항은 단순한 세대 싸움이 아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겠다는 선언도 아니다. 경험했다는 이유만으로 남의 상실까지 결정하지 말라는 거부다.
나는 이 지점에서 마일스의 선택을 지지한다. 영웅이 되겠다는 꿈보다, 어떤 일을 영웅의 의무로 받아들일지 정하는 일이 더 어렵다. 영화는 그 어려운 결정을 주인공 대신 선배들에게 맡기지 않는다.
물론 결심이 또렷하다고 사건의 중단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뜻을 세운 것과 실제로 구할 길을 찾아내는 것은 다른 과제다. 이 영화는 앞의 과제를 해냈고, 뒤의 과제는 남겼다.
그렇다면 그 결심을 응원하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 마일스는 사람을 구하고도 선배들에게 제지당한다. 나는 여기서부터 그들의 규칙을 믿지 못했다.
영웅들이 몰려올수록 마일스가 옳아진다
나는 익숙한 영웅들을 추격자로 바꾼 선택을 가장 높이 산다. 사람을 구하는 일과 조직의 말을 따르는 일이 여기서 갈라진다.
마일스는 위험에 처한 경찰관을 구한다. 그런데 스파이더맨들의 조직은 그 행동이 세계의 질서를 깨뜨렸다고 말한다. 눈앞의 사람을 살렸는데, 영웅들이 모인 곳에서 잘못했다는 말을 듣는다.
이때 영화는 누구를 구했느냐보다 누가 구해도 된다고 정하느냐를 묻는다. 구조에 성공한 소년에게 돌아오는 것은 안도가 아니라 제지다. 마일스가 조직을 의심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물론 미겔에게도 이유는 있다. 조직을 이끄는 그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다. 가까운 사람을 구하려다 더 많은 사람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경고는 가볍지 않다.
하지만 두려움이 절실하다고 설명까지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 미겔이 말하는 ‘공식 사건’은 세계 유지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그가 주장하는 사건이다. 영화는 그 주장을 입증된 법칙으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마일스의 거부를 철없는 고집으로 읽지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의 위험을 무시하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죽음만은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충돌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 추격전이다. 여러 세계의 스파이더맨들이 마일스를 쫓는다. 평소라면 반가웠을 가면들이 이번에는 소년의 도망을 막는 얼굴이 된다.
나는 영웅이 떼로 나오면 반기는 편인데, 여기서는 한 명씩 퇴근시키고 싶었다.
이 장면은 익숙한 영웅을 많이 보여 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영웅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마일스가 견뎌야 할 압박도 커진다. 혼자라는 사실이 곧 틀렸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점을 액션으로 보여 준다.
그렇다고 쫓는 이들을 모두 악당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지키려는 마음으로 뭉친 사람들도 누군가의 선택을 짓누른다. 나는 그 불편함을 피하지 않은 점이 좋다.
마일스가 맞서야 하는 것은 힘센 상대만이 아니다. 자신을 이해해 줄 거라 믿었던 사람들의 확신이다. 하지만 선배들이 밉다고 마일스의 마음까지 저절로 와닿지는 않는다. 그 마음을 들려주는 것은 두 주인공의 목소리다.
목소리가 반항을 사람의 선택으로 만든다
두 주인공의 목소리는 규칙보다 관계를 잃을 두려움을 먼저 들려준다. 그래서 마일스의 거부는 말싸움에서 이기려는 고집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는 선택으로 들린다.
마일스를 맡은 셔믹 무어는 그웬과 도시 풍경 속에서 대화할 때 자신감과 어색함을 함께 드러낸다. 장난스럽게 말을 건네도, 좋아하는 친구 앞에서 마음까지 능숙하게 다루지는 못한다. 나는 이 어설픈 말투가 좋다.
동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그웬에게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같은 목소리에 담긴다. 그러니 미겔의 요구를 거부하며 말투가 단단해질 때, 무엇을 포기하는지도 들린다. 마일스는 혼자가 좋아서 돌아서는 소년이 아니다.
그웬을 맡은 헤일리 스타인펠드는 친밀하게 말하면서도 끝내 다 털어놓지 않는 거리를 남긴다. 마일스와의 대화에서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말을 아끼는 순간에는 비밀을 들킬 불안이 앞선다. 아버지 앞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태도와 이어 보면 그 망설임이 더 아프다.
그웬은 아버지와 멀어진 뒤 영웅들의 조직에 의지한 인물이다. 그곳을 잃을까 두려워 친구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사정이 목소리에 실린다. 그래서 나는 그웬을 단순히 마일스를 돕거나 방해하는 연애 상대로 보지 않는다.
마일스가 선배들의 인정을 원한다면, 그웬은 자신이 기댄 곳을 잃고 싶지 않다.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장면에는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마음과 물러서는 마음이 함께 있다. 조직의 규칙이 끼어드는 순간 잃을 것이 생기는 이유다.
미겔을 맡은 오스카 아이작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는 규칙을 설명할 때의 권위를 추격할 때의 위협으로 바꾼다.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가 맡은 아버지 제프는 아들을 혼내면서도 걱정을 감추지 못한다. 마일스가 지키려는 것은 추상적인 목숨이 아니다. 집에서 자신에게 잔소리하는 아버지다.
이 목소리들 덕분에 마일스가 거부하는 요구는 구체적으로 아프다. 추상적인 희생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걱정하며 잔소리하는 사람을 잃지 않겠다는 뜻이다. 반항의 대가가 관계 안에서 들리니, 그 선택을 끝까지 보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목소리가 미처 말하지 못한 마음을 들려주는 동안, 화면은 정해진 운명을 어떻게 흔들고 있을까?
그림부터 정답이 하나라는 말을 거부한다
이 영화에서 세계마다 다른 그림은 구경거리로 끝나지 않는다. 나는 그 차이가 사람의 삶을 한 가지 규칙에 맞추려는 미겔에게 맞선다고 본다.
여러 세계를 오간다는 설정은 배경만 바꿔도 설명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선과 색이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까지 바꾼다. 사는 곳이 다르다는 사실보다, 같은 일을 겪어도 마음은 다르게 움직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웬의 세계가 가장 좋은 예다. 아버지와 부딪힐 때 배경색도 번지고 달라진다. 얼굴에 드러난 표정만이 아니라, 두 사람을 둘러싼 공간까지 그 대화를 겪는다.
이때 색은 대사로 설명한 감정을 다시 꾸미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웬이 말로 다 꺼내지 못한 마음을 화면에 펼친다. 목소리가 자신을 지키려 애쓰는 동안, 배경은 그 방어가 얼마나 힘겨운지 보여 준다.
그래서 화려한 화면이 감정을 가린다는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 장면에서는 색을 덜어내면 마음도 덜 보인다. 아버지와 딸 사이의 거리는 두 사람의 몸이 떨어진 간격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나는 이 장면에서 배경을 보느라 오히려 대화에 더 귀를 기울였다. 색이 달라지니 같은 말도 다르게 들렸다. 그림이 인물에게서 시선을 빼앗는 대신, 그가 숨기는 마음으로 돌려놓는다.
미겔의 세계는 다른 방식으로 그의 확신을 흔든다. 정해진 운명을 강조하는 인물의 세계에도 밑그림과 미완성 여백이 남아 있다. 화면은 그가 말하는 질서처럼 빈틈없이 닫혀 있지 않다.
규칙을 설명하는 쪽의 세계부터 아직 덜 그려져 있다.
이 차이가 미겔의 주장을 거짓으로 증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그 여백 때문에 그의 확신을 더 의심하게 된다. 아직 그려지지 않은 곳이 있는데, 남의 미래까지 끝난 이야기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웬의 배경색은 관계에 따라 달라지고, 미겔의 세계에는 채워지지 않은 자리가 있다. 서로 다른 그림은 마일스에게도 다른 선택이 남아 있다는 기대를 키운다.
그 선택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아니다. 그래도 실패가 두렵다는 이유로 선택할 기회부터 없애는 태도에는 맞선다. 화면까지 미래를 열어 두는 영화라면, 이야기를 중단하는 선택도 같은 이유로 용서해야 할까?
선택은 끝냈지만 책임까지 끝낸 건 아니다
나는 미완결이라는 비판에 여기까지는 동의한다. 마일스는 반항을 선택했지만, 영화는 그 선택을 감당하는 일을 다음 편으로 넘긴다.
140분 뒤에도 아버지의 생사와 악당 스팟과의 대결은 해결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반전을 말하지 않아도, 이 중단이 왜 아쉬운지는 분명하다. 영화가 가장 간절하게 만든 바람의 결과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일스가 선배들의 허락 없이 움직이기로 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결심만으로 아버지를 구할 방법까지 생기지는 않는다. 그가 다른 사람들의 안전과 아버지의 목숨을 함께 지킬 길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는다.
바로 그 어려움 때문에 나는 이후의 행동을 보고 싶었다. 미겔의 요구를 거부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요구와 다른 답을 어떻게 찾는지가 궁금했다. 영화는 그 궁금증을 충분히 키운 뒤 멈춘다.
여기서 다음 편이 기대된다는 칭찬만 하기에는 관객이 이미 쓴 시간이 길다. 기다리고 싶게 만드는 능력과 한 편을 만족스럽게 끝내는 능력은 다르다. 전자가 뛰어나다고 후자의 빈자리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긴 이야기를 두 편으로 나눈 사정은 이해한다. 내가 보기엔 마일스와 그웬의 갈등을 서둘러 정리하지 않으려는 선택이다. 두 사람의 마음에 시간을 준 덕분에 반항도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나눈 자리까지 최선이었다고 동의하지는 않는다. 조별과제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골랐다고 발표까지 끝낸 것은 아니다.
미래를 열어 둔 화면과 사건을 중단한 결말도 구분해야 한다. 인물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을 남기는 일은 좋다. 관객이 기다린 핵심 위기의 결과를 남기는 일에는 별도의 대가가 따른다.
나는 마일스가 반드시 성공해야 좋은 영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하더라도 자기 선택 때문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감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이 작품은 그 시험을 본격적으로 치르기 전에 다음 편을 기다리게 한다.
그래서 내 아쉬움은 반항이 약해서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항을 너무 잘 설득했기에, 결심 이후까지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아쉬워하면서도 추천한다.
반항은 훌륭하다, 그다음까지 보고 싶었다
나는 마일스의 반항을 지지한다. 먼저 고통을 겪었다는 이유로 후배에게 같은 상처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 이 영화는 그 부당함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웅들의 추격전 한가운데 세운다.
익숙한 가면들이 소년을 쫓을수록 누구의 편에 설지 또렷해진다. 그웬의 배경색과 두 주인공의 망설이는 목소리는 그 선택에 마음을 붙인다. 거대한 세계를 돌아다녀도 내가 걱정한 것은 결국 이 아이들의 관계였다.
내 별점은 5점 만점에 4점이다. 추격전은 마일스 편에 서게 만들고, 그림과 목소리는 그가 잃기 싫은 사람들을 걱정하게 만든다. 다만 핵심 위기의 해결을 다음 편으로 넘겨, 한 편을 다 봤다는 만족은 깎았다. 결심을 끝낸 것과 책임을 다한 것은 다르다.
화려한 액션 속에서도 부모와 자식, 친구 사이의 갈등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선배의 경험이 어느새 내 의무가 되는 순간을 겪었다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반대로 한 편 안에서 악당과의 대결까지 정리돼야 만족한다면 권하지 않는다.
볼 때는 미겔의 설명을 영화가 보증한 정답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무엇을 주장하는지만큼 왜 그토록 확신하는지도 들어야 한다. 그웬의 세계에서는 얼굴뿐 아니라 대화에 따라 번지는 배경색도 함께 보길 권한다.
전작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와 이어 보면 선배들의 자리가 달라진 점이 선명해진다. 영웅이 되도록 도와준 사람들의 말을, 영웅이 된 뒤에도 따라야 하는가. 이 속편은 그 질문을 피하지 않은 덕분에 훌륭하다.
나는 마일스의 반항을 지지한다. 다만 그 반항의 청구서까지 다음 편으로 넘긴 선택은 지지하지 않는다.
자주 묻는 질문 (FAQ)
전작을 안 보고 봐도 괜찮나요?
먼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를 보는 편을 권한다. 마일스와 그웬의 관계를 이해하기 쉽고, 성장을 돕던 선배들의 권위가 이번에는 시험받는다는 차이도 또렷해진다.
한 편으로 이야기가 끝나나요?
아니다. 마일스의 결심은 분명해지지만 핵심 위기와 악당의 대결은 해결되지 않는다. 사건의 결판까지 기대한다면 미완결이라는 점을 알고 보는 편이 좋다.
원작 만화 한 권을 그대로 옮긴 영화인가요?
마블 코믹스 캐릭터를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 만화 한 권을 직접 옮긴 작품은 아니다. 만화 지식보다 전작에서 시작된 마일스의 성장과 관계를 알고 가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영어 원음으로 볼 때 어떤 연기를 들으면 좋나요?
셔믹 무어가 마일스의 장난스러운 말투를 단단한 거부로 바꾸는 과정을 들어 보길 권한다. 헤일리 스타인펠드는 그웬의 친밀한 말투 안에도 망설임을 남긴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려 하면서도 말을 아끼는 순간이 중요하다.
복잡한 세계관을 미리 공부해야 하나요?
여러 세계마다 다른 스파이더맨이 존재한다는 기본 설정이면 충분하다. 미겔의 규칙은 확정된 정답이 아니라 그가 주장하는 설명으로 들어야 한다. 설정 이름을 외우기보다 마일스에게 어떤 희생을 요구하는지 따라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