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사평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2023) 리뷰: 재도전은 즐겁고, 형제의 시간은 짧다

LUX · 2026년 11월 05일

“게임에는 충실하지만 영화의 이야기는 약하다.” 이 비판은 약점의 자리를 너무 넓게 잡는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는 동생을 구하려는 형의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 문제는 형제가 함께할 시간을 좀처럼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브루클린에서 배관 일을 시작한 마리오와 루이지는 낯선 세계로 들어가며 헤어진다. 붙잡힌 동생을 찾으려는 마리오의 마음은 게임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관객에게도 곧장 전달된다. 그런데 영화는 둘을 떨어뜨려 놓은 뒤 훈련과 대결, 추격으로 바쁘게 달린다.

그 달리기는 꽤 즐겁고, 특히 마리오가 장애물 앞에서 계속 실패하는 훈련에서는 나도 다음 도전을 기다렸다. 익숙한 물건을 알아보는 재미보다, 재주가 부족해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응원하는 마음이 먼저 생겼다. 형제 영화인데 형제의 동반 출근 시간이 너무 짧다는 아쉬움은 그래서 더 크다.

나는 이 영화가 실패하는 마리오를 응원하게 만들어서 좋다. 다만 형제애로 시작한 모험치고는 형제를 너무 오래 떼어 놓았다.

이야기가 없는 게 아니라, 형제가 만날 시간이 없다

사건이 부족한 영화는 아니다. 형제의 사랑을 출발점으로 삼고도, 둘이 함께 행동할 시간을 적게 준 영화다.

마리오에게 루이지는 임무를 받고 찾아가야 하는 낯선 사람이 아니다. 브루클린에서 배관 일을 함께 시작한 동생이다. 이상한 파이프를 통과하다 헤어지기 전부터, 두 사람에게는 함께 꾸리려던 생활이 있다.

그래서 구출 대상을 피치 공주에서 루이지로 바꾼 선택은 좋다. 왜 위험을 감수하느냐는 질문에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마리오에게는 돌아가서 다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저쪽에 있다.

나는 이 간단한 이유가 모험을 단단하게 붙잡는다고 본다. 왕국을 구하는 일은 거대하지만, 동생을 데려오는 일은 가깝다. 게임의 규칙을 몰라도 형이 서둘러야 하는 이유부터 이해하게 된다.

다만 구해야 할 이유를 이해하는 것과,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출발만으로도 전달된다. 후자는 같이 겁먹고, 서로를 도우며, 상대의 반응을 받아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는 그 시간을 넉넉히 주지 않는다. 마리오는 버섯 왕국의 지도자 피치에게 배우고, 동키콩과 대결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쿠파에게 붙잡힌 루이지는 형의 모험에 직접 끼어들지 못한다.

그 결과 마리오가 어떤 사람인지는 행동으로 거듭 드러난다. 반면 형제가 어떤 조합인지는 둘이 떨어지기 전에 보여 준 관계에 오래 기대야 한다. 형을 걱정하는 동생과 동생을 찾는 형은 있지만, 서로 때문에 달라지는 순간은 적다.

떨어뜨려 놓았다는 선택 자체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구출 이야기는 누군가를 잃는 데서 시작한다. 문제는 떨어진 시간이 길어질수록, 둘이 다시 만나야 하는 마음도 그만큼 자라야 한다는 데 있다.

새로운 동료와 새로운 장애물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그 마음을 더해 주는 시간은 짧다. 마리오의 여정은 계속 움직이는데, 형제의 관계는 다음 만남을 기다린다. 나는 구출의 성공보다 둘이 다시 함께 움직이는 순간을 더 기다리게 됐다.

그렇다면 동생 없이 달리는 동안에도, 이 서툰 형을 끝까지 응원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계속 떨어지는 마리오가 가장 믿음직하다

훈련 장면이 좋은 이유는 게임의 재도전을 마리오의 성격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장애물 앞에서 자꾸 실패하는 모습만으로도, 나는 이 배관공을 응원하게 됐다.

피치가 알려 주는 낯선 세계의 규칙은 마리오에게 아직 어렵다.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고, 도전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그래도 그는 다시 시작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패를 짧게 반복하는 순서다. 영화는 먼저 마리오가 서툴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그다음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잘해서 믿음직한 사람이 아니라, 못해도 달아나지 않아서 믿음직한 사람이 된다.

게임에서는 내가 실패했으니 직접 다시 도전한다. 영화에서는 마리오가 실패한 뒤 무엇을 하는지 지켜본다. 손에 조작기를 쥐여 주지 않고도 다음 시도를 기다리게 만든 셈이다.

나는 멋지게 통과하는 순간보다 실패한 뒤 다시 나서는 쪽에 마음이 갔다. 저 정도면 그만둘 법한데 또 하겠다는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정이 간다. 동생을 구하겠다는 말에도 그만큼 힘이 붙는다.

이 장면은 훈련과 구출을 따로 놀게 두지 않는다. 당장 장애물 하나를 넘지 못해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니, 동생을 찾는 일도 쉽게 버리지 않으리라 믿게 한다. 형제의 빈자리를 완전히 채우지는 못하지만, 형을 따라갈 이유는 확실히 만든다.

레인보우 로드에서도 익숙한 게임 요소는 제 몫을 한다. 카트가 달리는 무지개색 공중 도로에서, 아이템과 추격은 한 사건으로 묶인다. 아는 물건이 나왔다고 반가워할 틈에 다음 위험이 닥친다.

카트는 전시된 물건이 아니라 당장 움직여야 하는 탈것이다. 아이템도 이름을 맞히는 퀴즈가 아니라 추격 속에서 써야 하는 도구다. 무엇을 알아봤느냐보다 지금 어떻게 빠져나가느냐가 앞선다.

운전면허 연습부터 도로 추격까지, 초보자에게 교육 과정이 너무 알차다.

훈련에서는 버티는 사람을 응원하고, 추격에서는 그 사람이 위험을 넘기를 바라게 된다. 영화가 게임을 닮아서만 즐거운 것은 아니다. 익숙한 동작에 마리오가 애쓰는 이유를 붙였기 때문에 즐겁다.

넘어지는 몸이 웃음을 준다면, 다시 해보려는 목소리는 그를 응원하게 만든다.

목소리는 영웅보다 초보자를 살린다

크리스 프랫과 안야 테일러조이의 목소리는 영웅의 멋보다 배우는 사람의 노력을 살린다. 능숙하게 이끄는 피치와 서툴게 따라가는 마리오의 차이가 응원할 자리를 만든다.

마리오를 맡은 프랫의 목소리는 게임 속 짧은 외침보다 일상적인 대화에 가깝다. 반복 훈련에서도 그 목소리는 마리오를 대단한 운명의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다시 해보려는 배관공 곁에 머문다.

나는 이 선택이 좋다. 짧은 외침으로 반가움을 주는 목소리와, 모험 내내 따라가고 싶은 목소리는 다르다. 프랫은 익숙한 소리를 흉내 내기보다 마리오의 조급함과 끈기를 받아들일 틈을 준다.

그래서 훈련의 실패가 단순한 몸개그로 끝나지 않는다. 넘어지는 몸은 우스워도, 다시 도전하는 사람까지 우습게 만들지는 않는다. 동생을 구하겠다는 마음을 거창하게 외치지 않아도 그 노력을 믿게 한다.

피치를 맡은 테일러조이는 반대로 낯선 세계를 이미 잘 아는 사람의 목소리를 낸다. 장애물 통과 시범에서 피치의 능숙한 몸짓과 흔들리지 않는 안내가 맞물린다. 마리오가 헤매는 동안에도 피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

그 차이는 마리오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피치가 쉽게 해내는 일을 그가 어렵게 배우기 때문에, 실패 뒤의 재도전이 더 또렷해진다. 두 사람의 관계를 연애보다 초보자와 안내자로 잡은 선택도 여기에 힘을 보탠다.

피치의 목소리가 마리오와 함께 당황했다면 훈련의 기준도 흐려졌을 것이다. 테일러조이는 안내자의 자리를 지켜, 프랫이 서툴러도 괜찮은 공간을 만든다. 한 사람이 능숙한 덕분에 다른 사람의 노력이 보인다.

루이지를 맡은 찰리 데이는 낯선 세계를 두려워하는 불안을 전하지만, 형과 떨어져 있어 함께 호흡할 기회는 적다.

정복자 쿠파를 맡은 잭 블랙은 「Peaches」에서 위협적인 목소리를 과한 구애로 꺾어, 피치를 차지하려는 욕심을 웃음으로 바꾼다.

왕국을 위협하던 목소리가 피아노 앞에서는 구애에 야근한다.

노래에서는 나도 웃음이 터졌다. 쿠파의 거대한 몸과 간절한 구애가 부딪치니, 게임에서 알던 악당이 아니라 지금 눈앞의 우스운 인물로 다가왔다.

목소리와 노래까지 익숙한 인물에게 새 재미를 붙였다면, 게임 요소를 많이 꺼냈다는 비판은 어디까지 맞을까?

팬을 즐겁게 했다고 광고가 되지는 않는다

나는 이 영화를 ‘긴 광고’로 보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익숙한 세계를 알아보는 기쁨이 형제의 빈자리까지 채워 주지는 않는다.

비평가 제임스 베라디넬리는 옛 게임의 즐거움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를 ‘긴 광고’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팬이 반가워할 물건을 많이 보여 준다는 지적은 맞다. 그러나 무엇을 보여 주느냐만으로 광고와 이야기를 가를 수는 없다.

내 기준은 그 물건과 동작이 인물에게 무슨 일을 시키느냐다. 알아보는 순간에만 즐겁고 끝난다면 나도 그 비판에 동의했을 것이다. 여기서는 익숙한 게임 장면이 마리오를 응원할 이유도 만든다.

훈련을 다시 떠올려 보자. 장애물을 넘는 동작은 게임에서 가져왔지만, 거듭 실패하고도 돌아오는 선택은 마리오의 성격을 드러낸다. 나는 장애물의 재현보다 그 앞에 다시 선 사람을 보게 됐다.

레인보우 로드의 추격도 마찬가지다. 카트와 아이템은 알아보라고 멈춰 서 있지 않는다. 위험을 피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각자 할 일을 한다.

이 두 장면을 상품 나열로만 묶으면 영화가 실제로 해낸 일을 놓친다. 익숙해서 반가운 것과, 장면 안에서 쓸모가 있는 것은 동시에 성립한다. 팬을 기쁘게 했다는 이유로 그 쓸모까지 지울 필요는 없다.

1993년 실사판 《슈퍼 마리오》는 밝은 게임 세계를 어두운 공룡과 도시의 세계로 크게 바꿨다. 2023년판은 반대로 색채와 캐릭터, 게임의 동작을 익숙한 모습으로 옮긴다. 나는 이번 선택을 반긴다.

하지만 원작을 많이 바꿨다고 인물이 깊어지는 것도 아니다. 충실하게 옮겼다고 형제의 관계가 저절로 단단해지는 것도 아니다. 어느 쪽이든 결국 그 세계 안에서 사람을 응원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내 불만은 버섯 왕국이 너무 익숙하다는 데 있지 않다. 그 왕국을 헤매는 형과 동생이 서로에게 반응할 기회가 적다는 데 있다. 마리오의 끈기는 보이는데, 형제가 함께 버티는 모습은 부족하다.

낯익은 배경을 덜어 낸다고 이 문제가 바로 풀리지는 않는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장식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겁내고 움직일 시간이다. 게임 장면들이 이미 제 몫을 했다면, 이제 따져야 할 것은 형제에게 배정된 시간이다.

동생을 구할 이유는 충분하고, 함께할 시간은 부족하다

마리오의 끈기는 행동으로 쌓이지만, 루이지의 용기는 그만큼 쌓이지 않는다. 그래서 형을 응원하던 마음이 형제 모두를 향해 커지는 데에는 힘이 부족하다.

마리오는 실패할 때마다 자신을 보여 줄 기회를 얻는다. 훈련을 다시 시작하고, 대결에 나서고, 위험한 길로 들어간다. 동생을 찾겠다는 마음이 말에 머물지 않고 선택으로 이어진다.

반면 루이지는 중반 대부분을 포로로 보낸다. 두려워하는 모습은 그가 얼마나 위험한 처지인지 알려 준다. 그러나 위험에 놓인 모습을 보는 것과, 두려움을 이기는 과정을 보는 것은 다르다.

나는 루이지가 처음부터 용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겁이 많으니 작은 결심도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다만 그런 결심을 지켜볼 시간이 필요하다.

형에게 기대던 동생이 달라지려면, 형 없이 선택하는 순간도 충분해야 한다. 무서워도 무언가를 해보는 과정이 있어야 그다음 행동을 기다리게 된다. 영화는 그 기다림을 키울 기회를 적게 준다.

이것은 루이지의 변화가 말이 안 된다는 비판과 다르다. 사랑하는 형을 위해 용기를 낸다는 마음은 이해한다. 내가 아쉬운 것은 그 마음을 이해한 만큼 오래 응원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형제가 떨어져 있어도 관계를 쌓는 길은 있다. 서로에게 배운 태도가 각자의 선택에서 드러나면 된다. 하지만 여기서는 마리오의 전진에 비해 루이지가 스스로 움직일 자리가 좁다.

그래서 둘의 재회를 기다리는 이유도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에는 동생이 무사하기를 바라다가, 나중에는 둘이 함께할 장면을 보고 싶어진다. 구출의 필요는 충분히 알았으니 관계의 다음 모습을 달라는 마음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압축에는 짧은 상영시간도 작용했다. 92분 안에 훈련과 대결, 추격까지 담으려니 형제가 함께할 시간이 밀렸을 것이다. 빠른 모험을 택한 대가가 가장 가까운 두 사람에게 돌아갔다.

짧아서 경쾌하다는 장점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분량이 아쉬움을 지워 주는 면허는 아니다. 형제애를 모험의 이유로 골랐다면, 그 관계에도 시간을 써야 한다.

나는 다음 장애물은 기다렸지만, 형제의 다음 대화에는 더 목말랐다.

응원할 형은 만들었지만, 함께 뛸 시간을 아꼈다

나는 이 영화가 게임을 구경하는 데서 멈췄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훈련에서 거듭 실패하는 마리오는 아는 캐릭터를 넘어 응원하고 싶은 사람이 된다. 레인보우 로드 역시 익숙한 물건을 실제 위험과 추격으로 바꾼다.

높이 사는 것은 바로 그 솜씨다. 게임에서는 내가 다시 도전하지만, 영화에서는 마리오가 다시 나서기를 기다린다.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실패 다음을 궁금하게 만들었으니, 게임을 영화로 옮긴 보람은 충분하다.

감점한 이유는 형제애를 앞세우고도 형제가 함께 움직일 시간을 아꼈기 때문이다. 형의 끈기는 차곡차곡 쌓이는데 동생의 용기는 서둘러 따라온다. 구출의 이유는 분명하지만, 관계가 자라는 과정은 짧다.

마리오의 동작이 훈련과 추격으로 바뀌는 재미를 원한다면 추천한다. 짧고 경쾌한 가족 모험을 찾는 관객에게도 92분은 아깝지 않다. 게임을 몰라도 동생을 찾으려는 형의 마음부터 따라가면 된다.

반대로 형제가 함께 부딪치며 달라지는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아쉽다. 인물의 변화가 차근차근 쌓이는 영화를 원한다면 내 추천 순위는 내려간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을 기다릴수록 빠른 전개가 야속해진다.

볼 때는 아는 아이템의 개수보다 실패한 마리오의 다음 행동을 보라. 피치도 구출 대상이 아니라 낯선 세계를 가르치는 안내자로 받아들이면 좋다. 그러면 둘의 실력 차이가 마리오를 응원할 이유로 바뀐다.

이어서 볼 작품은 1993년 실사판 《슈퍼 마리오》다. 어느 쪽이 게임과 더 닮았는지보다, 어느 쪽에서 인물을 더 응원하게 되는지 비교하면 좋다. 원작을 바꾸는 일과 지키는 일 모두 결국 그 질문을 피하지 못한다.

내 별점은 5점 만점에 3.5점이다. 실패를 응원하게 만든 모험은 즐거웠다. 다 보고 나니 버섯 왕국보다 형제의 시간이 더 아쉬웠다. 그 안에서 형제가 함께 뛰는 시간을 더 보고 싶었다.

★★★☆☆ (3.5/5) — 재도전은 응원하게 만들고, 형제의 시간은 아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마리오 게임을 몰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나요?

동생을 구하려는 형의 모험이라 기본 이야기는 쉽게 따라간다. 게임을 알면 배경과 아이템을 알아보는 재미가 더해진다. 처음 본다면 이름을 외우기보다 마리오가 실패한 뒤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면 좋다.

특정 마리오 게임을 그대로 영화로 만든 작품인가요?

특정 게임 한 편을 그대로 옮긴 작품은 아니다. 닌텐도 마리오 시리즈의 세계와 동작을 묶어 배관공 형제의 기원 이야기로 만들었다. 장애물 훈련과 카트 추격이 그 차이를 잘 보여 준다.

원작의 공주 구출 이야기와 무엇이 다른가요?

이번에는 피치가 아니라 루이지가 구출 대상이다. 피치는 버섯 왕국의 지도자이자 마리오에게 규칙을 가르치는 안내자다. 이 변화 덕분에 마리오가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가까워졌지만, 형제의 동행은 짧아졌다.

1993년 실사판을 먼저 봐야 하나요?

먼저 볼 필요는 없다. 2023년판은 평범한 배관공 형제가 낯선 세계에 들어가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두 작품을 비교하고 싶다면 이번 영화를 본 뒤 실사판을 이어 보는 편을 권한다.

아이와 함께 볼 가족 영화로 추천하나요?

짧고 경쾌한 모험을 원하는 가족에게 추천한다. 상영시간은 92분이며 훈련과 대결, 추격이 빠르게 이어진다. 다만 형제 관계가 천천히 깊어지는 이야기보다 행동의 재미에 무게를 둔다.

김지훈 기자
ALJIstory 편집장

보이지 않는 이면의 진실을 파고드는 심층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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