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사평

베이비 레인디어(2024) 리뷰: 피해자의 결점을 숨기지 않아 더 정확한 드라마

LUX · 2026년 11월 04일

술집에서 일하는 코미디언 지망생 도니 앞에 손님 마사가 앉아 있다. 마사는 울고 있고, 도니는 돈을 받지 않고 차 한 잔을 건넨다. 마사는 그 친절을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생겼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선량한 남자가 위험한 손님을 만나는 이야기지만, 도니의 반응은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마사의 관심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을 완전히 밀어내지 못한다. 나는 그 망설임이 답답했지만, 바로 그 답답함 때문에 이 사람이 왜 관계를 끊지 못하는지 더 보고 싶어졌다.

차 한 잔에서 인간관계의 모든 안전수칙을 뽑아내고 싶어진다. 안 된다. 이 드라마에서 따져야 할 것은 친절을 베푼 잘못이 아니라, 도니의 서툰 선택을 어디까지 그의 책임으로 물어야 하느냐는 문제다.

나는 《베이비 레인디어》가 도니의 잘못된 선택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가 당한 폭력까지 그의 잘못으로 돌리지 않기에 뛰어난 드라마라고 판단한다.

차를 건넨 손보다 끊지 못한 관계를 본다

나는 도니가 마사에게 베푼 친절보다, 그 뒤의 관심을 끊지 못하는 이유에 주목한다. 이 드라마가 잘하는 일은 도니의 망설임을 감추지 않고 우리 앞에 놓는 것이다.

도니는 무대에서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 하는 코미디언 지망생이다. 누군가 자신을 특별하게 여긴다는 사실은 그에게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그 관심이 반갑다는 마음과 상대가 두렵다는 마음이 함께 움직인다는 데 있다.

마사는 도니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의 생활에 들어온다. 도니에게는 불안한 접근이지만,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기쁨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나는 이 두 마음을 함께 보여주는 선택이 정확해서 좋았다.

그렇다고 마사의 행동이 덜 위험해지는 것은 아니다. 마사는 도니의 친절을 자신에게 허락된 권리처럼 행사한다. 괴롭힘이 연인과 가족에게까지 번지면, 둘 사이의 애매한 호감이라는 설명으로 넘길 수도 없다.

여기서 도니가 관심을 원했다는 사실만 붙잡으면 책임을 잘못 묻게 된다.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따라다녀도 된다는 허락이 아니다. 도니의 대응이 서툴다는 지적과 마사가 그를 괴롭혔다는 판단은 함께 성립한다.

나는 화면을 보면서 도니가 얼른 관계를 끊기를 바랐다. 하지만 작품은 내가 바라는 결단을 서둘러 대신 내려주지 않는다. 도니가 관심을 밀어내지 못하는 모습을 남겨두고, 그 불편함을 끝까지 보게 한다.

이 선택 덕분에 도니는 보호받기 위해 결점부터 지워야 하는 인물이 되지 않는다. 인정받고 싶어 하고, 위험 앞에서 머뭇거리며,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드라마는 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폭력을 저지른 사람이 누구인지는 흐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에게 같은 몫의 잘못을 나눠주는 일이 아니다. 도니가 관계를 끊지 못한 이유와 마사가 관계를 침범한 책임을 따로 보는 일이다. 이 둘을 섞지 않기에, 답답한 주인공을 따라가는 시간이 헛되지 않다.

다만 지금 보이는 인정 욕구만으로 도니의 망설임이 전부 설명되지는 않는다. 두려움을 알면서도 관심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이 드라마는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

4화는 도니를 용서하라고 하지 않는다

4화가 뛰어난 이유는 도니의 선택을 옳다고 우기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가 그를 판단하면서 빠뜨린 과거의 상처를 보여준다.

이 회차는 현재의 스토킹에서 도니가 겪었던 성폭력으로 돌아간다. 유명 작가 대리언은 성공하고 싶은 도니에게 기회를 줄 사람으로 다가온다. 도니가 바라던 인정이 그를 해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해 장면의 충격만이 아니다. 도니를 해친 사람이 처음에는 그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는 선배였다는 사실이다. 도움을 기대했던 관계 안에서 폭력이 벌어졌기에, 믿고 싶었던 마음까지 상처로 남는다.

대리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마사의 관심을 놓지 못하는 현재와 이어진다. 두 관계가 같다는 뜻은 아니다. 도니에게는 자신을 특별하게 여겨 주는 사람을 밀어내는 일이 유난히 어렵다는 뜻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도니에게 따지던 질문을 멈췄다. 왜 빨리 도망치지 않느냐고 묻기는 쉬웠다. 하지만 그 질문만으로는 도니가 관계 안에서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설명되지 않았다.

과거를 알고 나서도 그의 행동이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았다. 답답한 선택은 여전히 답답했다. 달라진 것은 행동만 보고 피해까지 재단하던 내 판단이었다.

드라마는 도니의 잘못을 지우는 대신, 잘못을 묻는 범위를 정확하게 만든다. 그가 타인에게 주는 상처는 따져야 한다. 그러나 대리언이 저지른 폭력까지 도니의 인정 욕구 탓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성공하고 싶었다는 사실은 착취를 허락했다는 뜻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관심이 반가웠다는 사실도 괴롭힘에 동의했다는 뜻이 아니다. 4화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 이 차이를 선명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 회차가 도니의 잘못까지 감싸준다고 보지 않는다. 도니를 무조건 감싸려 했다면 그의 잘못된 선택부터 덜어냈을 것이다. 작품은 그 모습을 그대로 둔 채, 우리가 보지 못했던 일을 옆에 놓는다.

이전 회차에서 답답했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면, 같은 행동에도 다른 질문이 붙는다. 왜 저렇게 구느냐에서, 저 관계에서 무엇을 붙잡으려 하느냐로 옮겨간다. 그 질문은 도니의 잘못을 덮지 않으면서도, 그가 왜 그랬는지 더 보게 한다.

그리고 이 설명이 손쉬운 변명으로 들리지 않는 데에는, 고통과 잘못을 함께 드러내는 배우들의 몫이 크다.

배우들은 이해와 면죄부를 갈라놓는다

배우들은 도니의 고통과 그가 남에게 주는 상처를 함께 보여준다. 덕분에 나는 이 사람들을 이해하면서도, 그들의 행동까지 모두 용서하지는 않았다.

도니를 연기한 리처드 가드는 무대 고백에서 그 차이를 분명하게 만든다. 준비한 농담 대신 피해와 수치심을 꺼낼 때도, 잘 보이고 싶은 표정이 남아 있다. 고통을 말한다고 남의 반응을 신경 쓰던 버릇까지 사라지지는 않는 것이다.

가드는 이 고백을 용감한 사람의 승리 선언으로 꾸미지 않는다. 말을 꺼내는 목소리에는 숨기고 싶은 마음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함께 걸린다. 사람을 웃기려던 몸이 자기 고통을 드러내는 몸으로 바뀌자, 나는 웃음을 기다리던 마음부터 거뒀다.

그래서 이 장면은 도니를 좋아해 달라는 부탁보다 더 아프다. 그는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도 여전히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다. 가드는 그 욕구를 지우지 않고, 그렇다고 고백을 거짓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마사를 맡은 제시카 거닝은 친근함과 위협 사이를 단단히 붙들고 있다. 도니에게 다가가던 다정한 태도가 분노로 바뀌어도, 앞서 드러낸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외로운 사람과 위험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무섭다.

거닝은 마사를 불쌍히 여길 틈을 주지만, 그의 행동을 가볍게 넘길 틈은 주지 않는다. 반가운 관심을 원하던 표정이 상대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는 분노로 변한다. 나는 그 변화에서 연민을 거두기보다, 연민과 허락을 구별하게 됐다.

테리는 도니가 사귀는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나바 마우는 도니를 이해하려는 다정함과 숨겨진 연인으로 사는 아픔을 함께 드러낸다.

유명 작가 대리언을 맡은 톰 굿맨힐은 부드러운 태도를 유지해, 도니가 믿었던 친절이 어떻게 착취에 쓰이는지 보여준다.

이 연기들이 좋은 이유는 사람을 한 가지 감정으로 정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니의 아픔이 진짜라고 테리의 상처가 작아지지 않는다. 마사가 외롭다고 도니를 괴롭힐 권리가 생기지도 않는다.

그렇게 행동마다 책임을 나눠 묻고 나면, 도니에게도 날카로운 질문이 남는다. 그래도 그가 관심을 원했다는 이유로, 당한 피해 자체까지 의심해야 할까?

관심을 원했다고 폭력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나는 도니가 관계를 망친다는 비판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피해자가 아니라는 판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도니는 트랜스젠더 여성인 연인 테리에게 끌리면서도 주변 시선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관계를 숨기고, 자신을 이해하려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이때 테리가 다친 이유를 도니의 과거만으로 덮어서는 안 된다.

테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숨기는 이유에 대한 설명만이 아니다. 숨기지 않는 연인의 행동이다. 도니가 아픈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 요구를 지나치게 만들지 않는다.

반대로 도니가 테리에게 잘못했다고 해서 마사의 괴롭힘이 정당해지지도 않는다. 마사의 관심을 반긴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반가움은 자기 생활을 침범해도 좋다는 허락이 아니다.

관심을 받고 싶다는 바람과 상대의 모든 행동을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은 다르다. 도니가 이 차이를 분명하게 말하지 못했다고 해도, 마사가 지켜야 할 선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툰 거절을 허락으로 바꿔 읽는 쪽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 기준대로라면 피해자는 피해를 말하기 전에 인생 전체의 성적표부터 내야 한다. 자격시험이 아니다.

나는 도니에게 화가 나는 순간에도 그가 당한 일을 따로 보려 했다. 이 드라마는 그 구별을 관객 대신 끝내주지 않는다. 도니의 결점을 계속 보여주면서도, 폭력을 저지른 사람의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아이 메이 디스트로이 유》도 같은 기준으로 이어 볼 작품이다. 두 작품은 피해를 겪었다고 사람이 흠 없는 모범생으로 바뀌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피해자의 행동을 비판하는 일과 피해를 부정하는 일을 갈라놓는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중 《베이비 레인디어》가 집요하게 붙잡는 것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다. 도니는 남에게 인정받기를 바라지만,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그 부끄러움이 커질수록 누군가 자신을 특별하게 여긴다는 말에 더 매달린다.

그래서 나는 도니를 좋아하게 됐느냐보다 그에게 무엇을 묻게 됐느냐가 중요하다. 테리를 숨긴 일은 도니에게 묻고, 괴롭힘과 성폭력은 가해자에게 물어야 한다. 다만 이 복잡한 사람을 보여주는 방식까지 늘 정확한 것은 아니다.

도니를 믿게 해놓고 너무 많이 설명한다

나는 도니를 단순하게 재단하지 않는 태도를 높이 산다. 다만 그의 마음을 장면으로 보여준 뒤에도 거듭 말로 설명하는 방식은 아쉽다.

내레이션은 화면 밖 목소리로 사건이나 마음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도니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목소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끄러움을 전할 때 힘을 얻는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으면서 그 욕구를 감추려는 사람에게 잘 맞는 선택이다.

문제는 배우와 관계가 이미 전한 마음까지 다시 풀어준다는 데 있다. 마사의 관심을 두려워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마음은 가드의 반응에서 읽힌다. 테리와 가까워지고 싶으면서 관계를 숨기는 행동도 도니의 모순을 충분히 보여준다.

그런데 목소리가 그 모순의 뜻까지 정리하면, 나는 도니를 따라가기보다 설명을 듣게 된다. 행동을 보고 잠깐 망설일 시간이 줄어든다. 이 드라마의 장점인 불편한 판단을, 드라마 스스로 너무 빨리 마무리하는 셈이다.

표정도 말하고 관계도 말하고 화면 밖 목소리까지 총출동한다. 이미 들었다.

설명이 많다는 것보다 더 아쉬운 부분도 있다. 도니가 마사를 창작 소재로 삼는 책임은, 그의 연애와 인정 욕구만큼 끈질기게 묻지 않는다. 자신에게 불리한 일을 고백하는 용기와 타인을 이야기로 만드는 권리는 별개다.

도니의 고백이 솔직하다는 이유만으로 마사를 어떻게 그렸는지까지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마사가 도니를 괴롭혔다는 사실도 그 질문을 없애지는 못한다. 피해를 말할 권리와 타인을 묘사하는 책임은 함께 따져야 한다.

나는 마사를 보호하려고 도니의 피해를 덜 말하라는 뜻이 아니다. 도니의 잘못과 그가 당한 폭력을 갈라놓았듯, 고백의 가치와 창작의 책임도 갈라보자는 뜻이다. 드라마는 앞의 구별에는 집요하지만, 뒤의 구별 앞에서는 질문을 일찍 거둔다.

그 탓에 도니는 자신의 결점을 드러내면서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으로서는 덜 의심받는다. 관객에게 판단을 고치라고 요구한 작품이라면 자기 목소리도 같은 기준으로 물었어야 한다. 그래도 이 설명의 과잉과 덜 물은 책임은, 피해자를 보는 기준을 바꿔놓은 성취보다 작다.

잘못한 피해자에게도 폭력의 책임은 없다

나는 《베이비 레인디어》가 도니를 좋아하게 만드는 드라마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판단한다. 도니에게 화가 나면서도, 그가 당한 폭력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게 만든다. 피해자를 감싸기 위해 결점부터 지우지 않는 태도가 이 작품의 힘이다.

테리를 숨긴 행동은 도니가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인정받고 싶어 했다는 이유로 스토킹과 성폭력의 책임까지 떠안을 필요는 없다. 드라마는 이 차이를 말로만 주장하지 않고, 우리가 답답해했던 행동을 다시 보게 하면서 증명한다.

내 별점은 5점 만점에 4.5점이다. 4화는 도니의 행동을 다시 보게 하고, 배우들은 고통을 드러내면서도 잘못을 감추지 않는다. 이미 드러난 심리를 거듭 설명하고, 도니가 타인을 창작 소재로 삼는 책임은 덜 묻는 대목에서 감점했다. 솔직한 고백이라고 모든 질문을 통과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을 따라가며 자기 판단을 고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이 7부작에 시간을 쓸 가치가 충분하다. 반대로 명쾌한 응징과 시원한 해결을 원한다면 맞지 않는다. 스토킹과 성폭력 묘사가 힘든 사람에게도 가볍게 시작할 작품은 아니다.

볼 때는 도니가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지 따라가기를 권한다. 마사와 대리언, 테리 앞에서 달라지는 그의 행동이 더 또렷해진다. 실제 인물의 정체를 맞히는 일보다, 각색된 이야기 속 행동과 책임을 나눠 보는 편이 이 드라마에 더 가까이 간다.

이어서 볼 작품은 《아이 메이 디스트로이 유》다. 두 작품 모두 피해자를 흠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폭력의 책임을 흐리지 않는다. 나는 도니의 선택에 화가 났다. 그래도 그가 당한 폭력까지 그의 잘못이 되는 것은 아니다.

★★★★☆ (4.5/5) — 피해자의 결점을 드러내며 폭력의 책임은 정확히 묻는다

자주 묻는 질문 (FAQ)

《베이비 레인디어》는 실화인가요?

리처드 가드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드라마다. 다만 인물과 사건 순서 등을 각색했으므로 실제 사건의 기록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극중 행동과 처벌을 현실 인물의 이력으로 옮겨 읽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서 볼 수 있고 몇 부작인가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국 드라마로, 7부작 한정 시리즈다. 가벼운 스토킹 추격극보다 폭력 이후의 관계와 마음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성폭력이나 스토킹 묘사가 강한가요?

스토킹과 성폭력을 다루며, 특히 4화에서는 과거 성폭력 경험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관련 묘사가 힘들다면 무리해서 연속으로 볼 필요는 없다. 통쾌한 응징을 기대하며 시작할 작품도 아니다.

원작이 있나요? 드라마와 무엇이 다른가요?

가드의 2019년 동명 1인극이 원작이다. 70분 독백극을 7부작 다인물 드라마로 넓혔다. 무대에서 의자가 대신했던 마사를 배우가 연기하면서, 표정과 인물 사이의 관계가 더 중요해졌다.

비슷한 기준으로 이어 볼 작품은 무엇인가요?

《아이 메이 디스트로이 유》를 권한다. 두 작품 모두 피해 경험이 사람을 흠 없는 모범생으로 만들지는 않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피해자의 잘못을 비판하면서도 가해자의 책임을 흐리지 않는지 비교하면 좋다.

김지훈 기자
ALJIstory 편집장

보이지 않는 이면의 진실을 파고드는 심층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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