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노 템플이 맡은 과학자 페인은 외계 생물을 지키려 하지만, 영화는 그를 사건 설명에 묶어둔다. 하지만 내가 더 아까워한 것은 두 친구의 시간이다. 《베놈: 라스트 댄스》가 아깝게 써버린 것은 조연의 재능만이 아니다.
도망자 에디와 그의 몸속 외계인 베놈은 이번에도 티격태격한다. 톰 하디는 지친 얼굴과 들뜬 목소리로 한 몸 안에 두 친구를 만든다. 나는 둘이 가족의 차에 올라 함께 노래할 때, 이 마지막 여행을 더 따라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영화는 둘을 오래 내버려두지 않는다. 군대와 연구시설을 오가고, 외계 괴물을 불러오고, 감옥에 갇힌 악당의 사정까지 설명한다. 우주의 운명과 인류의 생존이 걸렸다. 나는 둘이 더 떠들었으면 했다.
이것은 액션을 빼고 수다만 들려달라는 주문이 아니다. 마지막 편이라면 싸움의 규모보다 헤어지기 싫은 마음을 먼저 키워야 한다. 함께 노는 순간마다 작별을 아쉽게 만드는 영화가, 정작 두 친구에게 남은 시간은 세계 멸망 소동에 너무 많이 내준다.
낭비된 것은 조연의 재능만이 아니다
나는 조연의 얇은 배역보다 두 주인공에게 돌아갈 시간이 줄어든 게 더 아깝다. 이번 영화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에디와 베놈을 헤어지기 싫은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적을 늘리는 일은 그다음이다.
둘은 멕시코에서 도망 생활을 하다가 사막과 라스베이거스를 지난다.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여행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 길 바깥에 설명해야 할 일을 잔뜩 마련한다.
군대는 외계 생물을 통제하려 하고, 연구진은 그들을 지키려 한다. 여기에 둘을 쫓는 외계 괴물까지 붙는다. 에디와 베놈의 대화가 이어질 만하면 다른 장소의 사정이 끼어든다.
물론 추격에는 이유가 있다. 베놈이 죽은 에디를 되살린 뒤, 둘에게 악당의 감옥을 열 흔적이 생겼다. 친구를 살린 일이 함께 도망쳐야 할 이유가 된다는 설정은 좋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더 아쉽다. 둘의 지난 선택만으로도 이번 여행을 다급하게 만들 재료는 충분하다. 그런데 영화는 그 선택이 둘에게 어떤 부담인지보다 적이 얼마나 위험한지 설명하는 데 힘을 쓴다.
위험을 알려주는 장면과 관계를 깊게 만드는 장면은 다르다. 괴물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면 다음 공격을 걱정한다. 둘이 함께 있을 때 즐겁다는 사실을 알면 그 시간이 끝날까 걱정한다.
마지막 편에 더 필요한 걱정은 후자다. 에디가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과 둘이 계속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지 않다. 나는 목숨을 건 싸움에 앞서 함께 살고 싶은 이유를 더 보고 싶었다.
조연의 역할도 이 기준으로 재야 한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두 친구를 다른 눈으로 보게 해준다면 시간을 쓸 가치가 있다. 반대로 다음 사건의 조건만 전하면, 이미 복잡한 도주에 설명 하나가 더 붙는다.
그래서 조연을 모두 덜어내자는 뜻은 아니다. 에디와 베놈이 낯선 사람을 만나기에 비로소 드러나는 마음도 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가족과 함께하는 짧은 시간에 그 일을 해낸다.
그렇다면 내가 더 보고 싶었던 두 친구의 시간은 무엇인가?
세상을 구할 이유는 차 안에 있다
나는 가족과 노래하고 함께 춤추는 장면에서 두 친구에게 더 정이 갔다. 거대한 적의 등장보다 이런 놀이가 둘의 작별을 아쉽게 만든다.
외계인을 만나고 싶어 하는 아버지 마틴은 가족 여행 중인 사람이다. 에디와 베놈은 이 가족의 차를 타고 함께 길을 간다. 쫓기는 둘에게 잠깐이나마 남의 평범한 하루가 열린다.
차 안에서 함께 부르는 노래는 ‘Space Oddity’다. 에디는 가족의 흥에 섞이는 일이 어색하지만, 베놈은 참여하고 싶어 한다. 같은 몸을 쓰는 둘이 나들이를 즐기는 속도는 다르다.
그 차이가 좋다. 에디에게는 낯선 가족과 동행하는 시간이지만, 베놈에게는 인간의 즐거움에 끼어들 기회다. 싸울 때만 드러나던 둘의 차이가 노래 앞에서도 살아난다.
여기서 가족은 구출을 기다리는 사람들로만 머물지 않는다. 함께 이동하고 노래하며, 별일 없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베놈이 지켜야 할 세상에는 이런 오후도 들어 있다.
나는 이 합창에서 둘의 도주가 조금만 늦어져도 좋겠다고 느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지금 이 차에 더 오래 타 있기를 바랐다. 마지막 여행에 필요한 마음은 바로 이것이다.
이 가족의 시간을 충분히 본 덕분에 베놈의 관심도 달리 읽힌다. 인간을 귀찮아하거나 먹을 것부터 찾는 괴물에게도 함께 놀고 싶은 욕심이 있다. 영화는 그 욕심을 설명하지 않고 합창에 끼워 넣는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첸과 추는 ‘Dancing Queen’의 춤도 같은 일을 한다. 첸은 에디와 베놈에게 익숙한 지인이다. 베놈은 여기서 적을 물리치는 능력 대신 놀고 싶은 성격을 드러낸다.
나는 지구의 위기보다 이 괴물의 춤 시간이 더 반가웠다. 인류 대표로 내놓기에는 조금 민망한 감상이다. 그래도 이 영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분명하다.
춤은 베놈이 없어지면 무엇이 사라지는지 알려준다. 강한 전투원 하나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에디의 계획을 자꾸 틀어놓으면서도 함께 노래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사라진다.
그래서 이 두 장면은 추격 사이에 쉬어 가는 시간만은 아니다. 마지막에 아쉬워할 모습을 미리 쌓는 시간이다. 괴물에게도 쉬는 날이 있다는 사실이, 계속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만든다.
물론 노래와 춤만 넣는다고 저절로 친구가 되지는 않는다. 그 놀이를 함께 겪는 두 존재가 느껴져야 한다. 이 작은 놀이가 관계로 다가오는 까닭은 하디의 목소리와 몸이 서로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하디는 둘을 만들고 영화는 자꾸 흩어진다
하디는 한 몸 안에 두 친구를 살려놓는다. 하지만 조연들은 그 우정을 넓히기보다 다음 사건을 설명하는 일에 묶인다.
에디를 연기하고 베놈의 목소리도 맡은 하디의 장점은 반응의 차이다. 베놈의 목소리는 들뜨는데, 에디의 얼굴과 몸에는 피곤함이 남는다. 한쪽이 즐거울수록 다른 쪽은 쉬고 싶어 한다.
가족 합창에서는 그 차이가 특히 반갑다. 노래에 끼고 싶은 베놈과 어색한 에디가 한 몸에서 엇갈린다. 하디는 둘이 다르다는 사실을 긴 설명 없이 납득시킨다.
나는 여기서 에디의 지친 반응을 더 보게 됐다. 귀찮다는 표정조차 상대가 늘 곁에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매번 감격하지 않아도 함께한 시간이 얼굴에 남는다.
그래서 베놈의 들뜬 목소리는 혼자 튀는 농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받아주는 에디의 몸이 있으니 두 친구의 대화가 된다. 이별을 걱정하게 만드는 힘은 거창한 대사보다 이 익숙한 주고받기에 있다.
여성 주요 배역인 주노 템플의 페인 박사는 외계 생물을 지키려는 과학자다. 군의 제거 방침에 맞설 때 보호하려는 뜻은 분명히 전해진다. 다만 영화는 그 뜻을 품은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보여줄 시간을 주지 않는다.
페인은 에디의 연인도, 그와 나란히 여행하는 주인공도 아니다. 그러니 두 친구와 직접 가까워지지 않는다고 탓할 일은 아니다. 아쉬운 것은 연구시설 밖에서도 살아 있을 사람으로 자라지 못한다는 점이다.
군과 맞서는 입장을 알게 된 뒤에도 나는 페인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무엇을 지키겠다는 말만큼, 왜 놓지 못하는지도 느끼고 싶었다. 배우가 전하는 보호의 마음을 영화가 충분히 키워주지 않는다.
치웨텔 에지오포가 맡은 군인 스트릭랜드는 외계 생물을 통제하려 한다. 명령할 때의 무게는 살아 있지만, 외계 생물과 손잡기까지의 마음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반대로 마틴 역의 리스 이판은 낙천적인 태도로 에디의 경계심을 풀어준다.
마틴에게는 가족과 여행하며 노래하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이 있기에 베놈이 부러워할 삶도 생긴다. 조연에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더 큰 사연이나 더 긴 설명이 아니다.
함께 보낸 시간이 두 친구를 새롭게 드러내면 된다. 하디가 살려낸 관계에 영화가 더 보태야 할 것도 그런 만남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노래와 춤을 빼고 추격만 늘렸다면 더 나았을까?
춤이 문제라는 말에는 절반만 동의한다
도망 중에 추는 춤은 추격의 긴장을 깨뜨린다. 하지만 내가 줄이고 싶은 것은 놀이가 아니라, 둘의 놀이를 자꾸 끊는 위협 설명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베놈은 첸과 ‘Dancing Queen’에 맞춰 춤춘다. 정체를 숨기고 달아나야 하는 처지에 눈에 띄는 즐거움을 고른다. 쫓기는 쪽이 스스로 구경거리를 만드는 선택은 분명히 허술하다.
완벽한 도주 계획이다. 춤만 안 추면.
베놈은 원래 충동적인 친구라는 설명도 여기서는 절반만 통한다. 성격에 맞는 행동이라고 해서 추격의 긴장까지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당장 위험하다던 영화가 춤출 여유를 주면, 나는 그 위험을 조금 덜 믿게 된다.
그러니 이 장면이 흐름을 끊는다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다만 그래서 춤을 빼자는 처방에는 반대한다. 이 마지막 편은 둘이 얼마나 잘 도망치는지만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헤어지기 싫어할 친구를 만드는 일도 해야 한다. 춤추는 베놈에게는 적을 찢는 힘과 다른 매력이 있다. 에디의 사정과 상관없이 놀고 싶어 하는 성가신 즐거움이다.
그 모습을 없애면 도주는 조금 매끈해질 것이다. 대신 마지막에 그리워할 베놈의 모습도 하나 줄어든다. 싸움만 잘하는 괴물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과는 아쉬움의 크기가 다르다.
나는 생활 속 웃음보다 세계 멸망과 연구시설 전투가 커졌다는 비판에 동의한다. 친구를 살린 일이 추적의 이유가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둘의 여행은 충분히 절박하다. 그 절박함을 거듭 설명할수록 함께 있는 시간이 더 귀해지는 것은 아니다.
적의 위험을 확인하는 장면이 늘어도, 둘이 함께라서 즐겁다는 마음은 대신 자라지 않는다. 추격에 필요한 설명과 작별에 필요한 시간을 같은 것으로 셀 수는 없다. 이 영화는 후자에 더 욕심을 냈어야 한다.
춤이 끝난 뒤에도 그 즐거움이 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따라갔다면 어땠을까. 나는 위험의 크기를 다시 확인하기보다, 그 시간이 끝나는 것을 아까워하고 싶었다.
춤을 춘 게 잘못은 아니다. 이제 따질 것은 영화가 그 가벼운 시간을 어떻게 작별의 무게로 바꾸느냐다.
작별은 준비했지만 함께할 시간은 줄였다
나는 두 친구의 관계를 끝내려는 방향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영화는 다음 위협까지 챙기느라 이번 작별에 쓸 시간을 줄인다.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는 다투던 둘이 다시 함께하기를 택하는 이야기다. 이번 영화는 그 선택 다음을 묻는다.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끝까지 함께해도 되는가.
이 질문은 마지막 편에 어울린다. 서로 귀찮아하면서도 곁에 남았던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상대를 원하는 마음과 상대에게 필요한 일이 다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영화가 전작의 말다툼을 반복하지 않은 점을 높이 산다. 또 다투고 화해하는 데 그쳤다면, 마지막 편이 아니라 동거 계약 갱신이다. 함께하기로 한 선택에 대가가 붙어야 마지막 여행도 달라진다.
감독이 비교한 《카사블랑카》도 이 기준으로 보면 이해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길을 가는 일이 언제나 최선인지 묻는 영화다. 두 작품을 나란히 놓을 이유는 바로 그 질문에 있다.
다만 질문이 좋다고 작별이 저절로 아쉬워지지는 않는다. 상대를 위해 무엇을 포기하는지 알려면, 함께 누리던 즐거움을 충분히 봐야 한다. 이 영화에서는 가족의 합창과 첸과의 춤이 그 일을 맡는다.
그 장면들은 베놈에게 싸움 말고도 하고 싶은 일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관계가 끝나는 방향을 이해하면서도,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나는 이 두 마음이 더 오래 부딪치기를 바랐다.
켈리 마르셸 감독은 “우리는 언제나 이것이 결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는 두 친구의 관계가 향할 곳을 분명히 정해놓았다. 문제는 그곳으로 가는 길에서도 다음 이야기를 준비한다는 점이다.
끝에 붙는 별도 영상은 악당 널의 위협을 이어간다. 널은 베놈 같은 외계 생명체들을 만들었지만 그들에게 갇힌 존재다. 두 친구에게 집중하고 싶은 순간에도 영화는 아직 남은 적을 기억시킨다.
작별 인사 중에도 다음 손님 번호표가 나온다.
다음 이야기를 열어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다만 이번 편은 이미 연구시설과 추적 괴물에 많은 시간을 썼다. 그 뒤에도 위협을 남기니, 친구들과 보낼 시간이 또 밀렸다는 아쉬움이 커진다.
작별은 아쉽다. 영화가 둘을 충분히 함께 있게 해줘서가 아니라, 함께 있는 장면들이 그만큼 좋았기 때문이다.
총평: 두 친구에게 한 곡만 더 줬어야 했다
《베놈: 라스트 댄스》는 함께 노는 순간마다 작별을 아쉽게 만든다. 그러나 마지막 여행의 귀한 시간을 세계 멸망 소동에 너무 많이 내준다. 나는 이 영화의 다정함은 좋아하지만, 시간을 나눠 쓰는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디의 지친 얼굴과 들뜬 목소리는 두 친구를 끝까지 살려낸다. 가족 합창은 그들이 지키고 싶은 삶을 보여준다. 반면 연구시설 전투와 다음 위협은 둘에게 집중할 시간을 빼앗는다.
내 점수는 5점 만점에 3점이다.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은 만들었지만, 그 마음을 충분히 키우기 전에 작별을 서두른 대가다.
전작에서 에디와 베놈의 말다툼을 좋아했다면 이번에도 볼 가치가 있다. 괴물이 노래에 끼고 싶어 하고 춤을 탐내는 모습에 웃었던 관객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그런 사소한 욕심에서 베놈을 좋아할 이유를 찾았다.
반대로 빈틈없는 추격이나 조연의 깊은 갈등을 원한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마지막 편만큼은 둘에게 온전히 집중하길 바랐던 관객도 아쉬울 것이다. 영화는 끝까지 친구의 여행과 거대한 전투를 함께 챙기려 한다.
볼 때는 새 악당의 설정보다 에디의 표정과 베놈의 목소리가 어긋나는 순간을 따라가면 좋다. 가족 합창에서는 이 괴물이 싸움 말고 무엇을 원하는지 보라. 작별의 무게는 그 작은 욕심에서 자란다.
이어서 볼 영화로는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를 먼저 고르겠다. 함께하기로 한 선택이 이번에 어떤 부담이 되는지 선명해진다. 《카사블랑카》는 사랑과 동행이 반드시 같은 말인지 비교하기 좋다.
나는 우주를 구하는 베놈보다, 에디 옆에서 한 곡 더 부르는 베놈을 오래 기억하겠다.
자주 묻는 질문 (FAQ)
전작을 안 보고 바로 봐도 되나요?
추격의 이유는 이번 편 안에서 설명되지만, 작별의 아쉬움은 전작을 알아야 더 크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를 먼저 보길 권한다. 둘이 다시 함께하기로 한 마음이 이번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베놈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인가요?
에디와 베놈의 관계를 마무리하는 실사 3부작의 세 번째 영화다. 다만 두 친구의 이야기와 세계관 전체의 마무리는 다르다. 끝에 붙는 영상은 남은 위협을 이어간다.
쿠키 영상이 있나요?
있다. 영화 뒤에 붙는 영상에서 널의 위협이 이어진다. 두 친구의 여행 이후에도 남는 세계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끝까지 보는 편이 좋다.
액션과 코미디 중 어느 쪽을 기대해야 하나요?
외계 괴물의 추격과 연구시설 전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내가 더 높이 평가한 것은 하디의 혼자 주고받기와 가족 합창, 베놈의 춤이다. 빈틈없는 추격보다 두 친구의 엉뚱한 일상을 좋아하는 관객에게 맞는다.
특정 원작 만화를 그대로 옮긴 영화인가요?
마블 코믹스의 베놈 캐릭터를 바탕으로 하지만, 특정 단행본 하나를 그대로 옮긴 영화는 아니다. 이번 편을 즐기는 데는 만화 설정을 외우기보다 앞선 영화에서 쌓인 에디와 베놈의 관계를 아는 편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