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사평

데드풀과 울버린(2024) 리뷰: 돌아온 얼굴보다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좋다

LUX · 2026년 10월 26일

데드풀로 활동하던 웨이드가 자동차를 판다. 영웅 일은 접었다. 어벤져스 입단에도 실패했다. 세상을 구하던 남자가 이제 손님에게 차를 팔아야 한다.

나는 이 출발점이 좋다. 웨이드는 큰 조직이 자신을 받아줘야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영웅으로 인정받지 못하자, 곁에 남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도 놓친다. 우주를 책임질 영웅의 다음 임무가 내려온다. 자동차 판매다.

그런 웨이드에게 자기 세계를 떠날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그곳에는 친구들이 남아 있다. 영화가 재미있어지는 지점은 여기다. 더 유명한 영웅이 될 기회보다, 함께 살아온 사람들을 버릴 수 없다는 마음이 그를 움직인다. 그래서 내가 따질 것은 돌아온 얼굴의 숫자가 아니다. 그 얼굴이 지금 누군가에게 필요한가다.

이 영화는 옛 영웅들에게 서로를 지킬 이유를 찾아준다. 나는 그 우정이 좋다. 다만 처음 온 관객보다 단골을 더 살갑게 맞는 영화다.

세계를 구하기 전에 차부터 팔고 있다

나는 차를 파는 웨이드에게서 영웅의 이름보다 중요한 문제를 본다. 어디에 소속됐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필요한 사람이냐는 문제다.

자동차 판매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웨이드가 영웅 일을 그만둔 자신을 실패자로 여긴다는 데 있다. 어벤져스의 거절이 일자리 하나가 아니라 자기 가치 전체에 대한 판결이 된 셈이다.

이 차이를 놓치면 그의 복귀는 단순한 재취업 이야기가 된다. 더 큰 조직에 들어가고, 더 대단한 임무를 맡으면 끝난다. 하지만 영화는 웨이드에게 그보다 불편한 선택을 내민다.

시간과 세계 사이의 문제를 관리하는 조직이 그를 찾아온다. 그 조직의 관리자 패러독스는 다른 세계로 갈 기회를 제시한다. 인정에 목마른 웨이드에게는 솔깃한 제안이다.

그런데 그 기회를 받아들이면 친구들이 남은 세계를 등져야 한다. 웨이드가 살던 세계는 로건의 죽음 뒤 서서히 사라질 처지다. 패러독스는 그 소멸을 더 빨리 끝내려 한다.

여기서 영화가 사람을 가르는 방식이 선명해진다. 패러독스에게 그 세계는 없애도 되는 곳이다. 웨이드에게는 친구들이 내일도 살아야 할 곳이다.

나는 이 충돌이 거대한 위기 자체보다 좋다. 세계가 사라진다는 말만으로는 누구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다. 웨이드가 친구들을 버리지 않겠다고 나설 때, 비로소 구해야 할 대상이 생긴다.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인정 욕구를 버린 사람은 아니다. 여전히 대단한 영웅이고 싶고, 자기 이름을 크게 알리고 싶다. 영화는 그 욕심을 지우지 않은 채 친구들을 향한 마음과 부딪치게 한다.

그래서 웨이드의 선택에는 힘이 있다. 남들이 매긴 등급을 올리는 일보다 곁의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 먼저가 된다. 자동차를 팔던 출발점은 이 순서의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지키겠다는 말만으로 필요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웨이드가 다른 세계의 울버린을 찾아가는 순간부터는 상대에게도 사정이 있다. 웨이드는 자기 세계를 구할 도움이 필요하다. 로건은 자신도 아직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여기서 울버린은 웨이드가 데려오면 되는 해결책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그 역시 실패를 안고 살아온 사람이다. 둘의 만남이 필요한 이유는 힘을 보태는 데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실패한 영웅을 다시 움직이는 힘은 조직의 승인일까, 곁에 선 또 다른 실패자일까?

수다와 침묵이 서로를 필요한 사람으로 만든다

레이놀즈와 잭맨은 실패를 숨기는 방식이 정반대다. 한 사람은 말을 늘리고 다른 사람은 입을 닫기에, 둘은 서로의 아픈 곳을 드러내는 상대가 된다.

웨이드를 연기하는 라이언 레이놀즈는 빠른 말에 인정받고 싶은 조바심을 섞는다. 어벤져스에 들어가지 못한 처지에서 친구들을 버리지 않겠다는 선택으로 넘어갈 때, 뻔뻔한 농담 뒤의 절박함이 살아난다. 다만 감정이 자라려는 순간에도 말을 보태는 버릇은 아쉽다.

로건을 연기하는 휴 잭맨은 지친 얼굴과 짧게 끊는 말로 그 수다를 받아낸다. 자신을 구해준 다른 로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로라 앞에서는, 침묵에 동료를 잃은 수치심이 묻어난다. 나는 이 대화에서 웃음을 멈췄다.

로라는 과거의 로건에게 구원받은 인물이다. 지금 눈앞의 로건에게는 그때의 공로도 기억도 없다. 그래서 이 대화는 옛 영웅을 칭찬하는 자리보다, 아직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자리에 가깝다.

잭맨은 그 말을 듣는 로건을 갑자기 당당한 영웅으로 바꾸지 않는다. 피로와 부끄러움이 남은 얼굴이어서, 다시 행동할 가능성도 더 절실하다. 과거를 지울 수 없다는 사실과 지금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함께 남는다.

두 배우의 박자가 좋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웨이드의 농담은 로건의 분노에 막히고, 로건의 침묵은 웨이드의 끈질긴 말에 흔들린다. 함께 있으면 편해서가 아니라 혼자 숨겨둔 실패를 더는 피하지 못해서 필요한 짝이다.

버려진 공간을 지배하는 카산드라 노바 역의 엠마 코린은 반대로 상대를 일방적으로 누른다. 머릿속에 손을 넣는 잔혹한 행동에도 얼굴은 차분해서, 소리치는 악당보다 불쾌감이 크다. 다만 왜 그렇게 남을 지배하려는지 들여다볼 시간은 부족하다.

패러독스 역의 매튜 맥패디언은 세계의 소멸을 공손하게 설명하며 사람을 처리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를 정확히 드러낸다.

이 두 인물을 곁에 두면 주연들의 변화가 더 또렷해진다. 웨이드와 로건은 상대를 자기 목적에 쓰려는 자리에서 출발하지만, 영화는 서로의 상처를 듣는 시간을 준다. 나는 옛 이름보다 그 시간이 두 사람을 살린다고 본다.

두 주연에게는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있다. 문제는 뒤이어 등장하는 옛 영웅들에게도 그 시간이 주어지느냐다.

둘의 말싸움은 누가 더 웃긴지 겨루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웨이드는 말을 쏟으며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숨긴다. 로건은 짧게 끊으며 실패한 자신을 들키지 않으려 한다. 말수는 정반대지만, 둘 다 자기 이야기를 피하고 있다는 점은 같다.

반가운 얼굴이라고 모두 빈손으로 온 건 아니다

옛 얼굴을 알아보는 재미가 이야기를 밀어낸다는 비판에 나는 동의한다. 하지만 로라까지 반가움만 팔고 떠나는 인물로 묶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보이드는 각 세계에서 제거된 인물들이 버려지는 공간이다. 여기에 블레이드와 엘렉트라, 갬빗이 모여 있다. 영화에서 밀려난 영웅들에게 다시 나설 자리를 준다는 발상은 애정이 있다.

문제는 등장할 때의 반가움이 모두에게 똑같이 전달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관객은 그들이 돌아왔다는 사실부터 즐긴다. 처음 만나는 관객은 왜 이 만남이 특별한지부터 짐작해야 한다.

장면을 이해하는 일과 그 장면 때문에 가슴이 뛰는 일은 다르다. 누가 누구 편인지 따라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오래 기다린 재회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대로 건넬 수는 없다.

숙제는 없다더니, 동창회에서 나만 졸업앨범을 못 받았다.

나는 이 차이가 단순히 농담 몇 개를 놓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가 돌아온 얼굴을 반겨주는 동안, 새 관객은 그 얼굴과 친해질 시간을 덜 받는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 현재의 인물을 이해하는 일보다 앞서는 순간이다.

로라는 여기서 다른 몫을 해낸다. 자신을 구한 다른 로건의 이야기를 지금의 로건에게 들려준다. 그 말은 옛 영화의 감동을 떠올리게 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지금의 로건은 동료를 잃은 죄책감에 붙잡혀 있다. 로라의 이야기는 그에게 실패가 남아 있어도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건넨다. 지나간 일을 지우는 대신 다음 행동을 바꿀 이유를 주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반가운 출연과 필요한 출연을 가르는 기준이다. 얼굴을 보여준 뒤 주인공의 선택에 무엇을 남겼는가. 로라는 다른 로건의 공로를 전하면서도, 눈앞의 로건에게 자기 선택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 대화는 앞선 영화를 몰라도 현재의 이야기로 읽힌다. 옛 로건을 기억하면 더 아프지만, 기억이 없어도 지금 로건에게 필요한 말이라는 사실은 남는다. 내가 이 영화의 재등장을 전부 이름값 장사로 치부하지 못하는 이유다.

하지만 옛 영웅에게 새 역할을 주는 일이, 이미 끝낸 작별까지 다시 건드릴 이유가 되는가?

《로건》의 죽음을 취소한 것은 아니다

나는 다른 세계의 로건에게 다시 살아갈 이유를 준 선택을 지지한다. 다만 별개의 인물이라는 설명만으로 앞선 작별을 다시 건드린 부담까지 없어지지는 않는다.

먼저 분명히 하자. 이번 주인공은 《로건》에서 죽은 인물을 되살린 존재가 아니다. 별개의 세계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또 다른 울버린이다.

그러니 앞선 죽음을 없던 일로 만들었다는 지적은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관객의 마음까지 설정대로 나뉘지는 않는다. 같은 휴 잭맨이 같은 이름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한 배우의 얼굴에 쌓인 기억은 인물 소개를 새로 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도 그 기억이 주는 반가움과 슬픔을 빌린다. 그렇다면 이전의 작별을 건드렸다는 아쉬움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따질 것은 돌아와도 되느냐가 아니다. 돌아온 로건이 지금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가다. 다시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에게 새 이야기가 필요했던 이유가 되지 못한다.

《로건》은 상처 입은 영웅에게 남은 생명이 끝없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겁게 둔다. 누군가를 지키는 선택은 그래서 절박하다. 자기 몸도 마음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움직인다.

이번 영화의 무게는 다른 곳에 놓인다. 동료를 잃은 로건은 살아 있어도 자신에게 남은 쓸모를 믿지 못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과거를 깨끗하게 고치는 일이 아니라 새 관계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앞선 영화가 남은 시간으로 무엇을 할지 묻는다면, 이번 영화는 남은 삶을 누구와 보낼지 묻는다. 두 작품은 상처 입은 사람이 타인을 구하며 자기 가치를 되찾는다는 점에서 만난다.

나는 이 차이가 재등장을 지탱한다고 본다. 이번 로건에게 예전의 영광을 확인하는 일만 주어졌다면 반가움은 금방 닳았을 것이다. 웨이드와 부딪치고 로라의 말을 듣기에, 그는 기억 속 영웅이 아니라 지금 선택해야 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고 앞선 작별의 무게가 그대로 보존됐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떠나보낸 얼굴을 다시 보는 기쁨에는 그 이별이 덜 단단해지는 대가도 따른다.

새 기회를 주겠다는 선택은 좋다. 그렇다면 그 기회를 나눠 받는 주변 사람들도 충분히 살아 있는가?

구할 세계는 커졌는데 친구들은 작아졌다

웨이드가 친구들을 지키려는 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보다 옛 영웅을 불러내는 데 더 바쁘다.

《데드풀 2》에서 웨이드는 소년 러셀을 살리려 나서며 가족의 가치를 배웠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말이 아니라, 눈앞의 한 사람을 버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이번에는 그 마음이 친구들이 사는 세계 전체로 넓어진다.

방향은 맞다. 더 큰 조직의 인정을 바라던 사람이 자기 곁의 사람들을 먼저 챙긴다. 웨이드에게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 영화는 정확히 알고 있다.

문제는 지켜야 할 사람들을 보여주는 시간이다. 기존 친구들의 개별 이야기가 줄면서, 이들이 웨이드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기억에 기대는 순간이 늘어난다. 전작에서 쌓은 애정이 이번 영화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야 한다.

보호 범위는 세계 전체로 늘었다. 친구들 대사는 아니다.

웨이드가 바네사와 헤어졌다는 사실은 그가 잃어버린 관계를 알려준다. 하지만 바네사는 그가 돌아가고 싶은 삶을 설명하는 역할에 더 가깝다. 그녀가 지금 어떤 삶을 원하는지까지 따라갈 시간은 적다.

친구 모두에게 별도의 사건을 달라는 뜻은 아니다. 웨이드와 함께 있을 때만 드러나는 말투나 선택이 조금 더 필요했다. 그래야 구해야 할 사람들이 주인공의 결심을 설명하는 데서 벗어난다.

이 차이는 로건과 나란히 놓으면 더 선명하다. 영화는 웨이드와 로건이 부딪치고, 상대의 상처를 듣고, 다시 움직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둘이 서로에게 필요해지는 이유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납득된다.

반면 기존 친구들은 이미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오래 본 관객은 그 빈칸을 채운다. 처음 만난 관객에게는 웨이드의 절박함을 같은 크기로 느낄 근거가 부족하다.

옛 영웅에게 새 자리를 주는 애정은 좋다. 다만 돌아온 인물들을 반기는 동안, 원래 곁에 있던 사람들의 자리가 좁아졌다. 버려진 영웅을 돌보겠다는 영화라면 이 생략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영화가 가장 공들여 증명한 관계는 결국 웨이드와 로건의 우정이다. 친구들을 지킨다는 큰 목표보다, 두 사람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작은 변화가 더 설득력 있다.

두 실패자의 우정은 이름값보다 오래간다

내 별점은 5점 만점에 3.5점이다. 두 주연의 우정만으로도 128분을 쓸 가치는 충분하다. 웨이드와 로건은 옛 이름을 다시 꺼내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서로의 실패를 마주하고, 지금 누군가를 위해 움직일 이유를 얻는다.

레이놀즈의 수다와 잭맨의 침묵이 맞부딪치는 순간마다 그 변화가 쌓인다. 로라와의 대화는 익숙한 얼굴의 귀환을 새로운 선택으로 바꾼다. 이것이 내가 두 주연의 재등장을 기꺼이 지지하는 이유다.

점수를 준 이유는 두 배우의 대비와 로라가 만들어낸 변화다. 감점한 이유는 과거를 알아야 커지는 웃음과 얇아진 친구들의 이야기다. 버려진 영웅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원래 곁에 있던 사람들은 덜 챙겼다.

거친 농담과 잔혹한 액션 속에서 우정이 자라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폭스 시절 마블 영화에 애정이 있다면 반가움도 더 크다. 반대로 농담을 쉬고 슬픔에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면 이 영화는 너무 자주 말을 건다.

이전 영화를 몰라도 사건은 따라간다. 다만 모든 재등장과 농담을 같은 크기로 즐기기는 어렵다. 영화는 그 차이를 끝내 없애지 못한다.

보기 전에는 죽은 로건이 부활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낯익은 얼굴을 세기보다 그 얼굴이 주인공의 다음 선택을 바꾸는지 보길 권한다. 반가운 출연과 필요한 출연이 거기서 갈린다.

이어서 볼 작품은 《로건》과 《데드풀 2》다. 전자는 상처 입은 영웅이 타인을 구하는 일을 더 절박하게 다룬다. 후자는 웨이드가 지키려는 가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준다.

나는 돌아온 얼굴보다 다시 누군가에게 필요해진 얼굴에 박수를 쳤다. 이 영화는 두 주연에게만큼은 그 박수를 벌어준다.

★★★☆☆ (3.5/5) — 돌아온 이름보다 서로에게 필요해진 두 사람이 좋다

자주 묻는 질문 (FAQ)

전작을 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나요?

웨이드가 자기 세계를 지키려 한다는 큰 이야기는 따라갈 수 있다. 다만 옛 인물의 재등장과 제작사 관련 농담은 이전 영화를 알수록 재미가 커진다. 시간이 있다면 《데드풀 2》와 《로건》을 먼저 권한다.

《로건》에서 죽은 울버린이 다시 살아난 건가요?

아니다. 이번 주인공은 별개의 세계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로건이다. 이 차이를 알고 보면 앞선 영화의 사건과 이번 인물의 과거를 혼동하지 않는다.

실화나 특정 만화를 그대로 옮긴 영화인가요?

실화가 아니라 마블 코믹스 캐릭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특정 단행본 한 권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다. 원작 만화를 미리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데드풀 3》에 해당하는 작품인가요?

《데드풀》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다. 앞선 두 편의 연애와 가족 이야기에서 실패한 두 영웅의 우정으로 중심을 옮겼다. 웨이드의 친구들을 향한 애정은 이어지지만 개별 이야기는 줄었다.

어떤 취향의 관객에게 잘 맞나요?

거친 농담과 잔혹한 액션, 티격태격하는 두 인물의 우정을 즐긴다면 잘 맞는다. 옛 마블 영화의 인물들을 기억한다면 재회의 기쁨도 크다. 농담 없이 인물의 슬픔을 오래 따라가는 영화를 원한다면 《로건》이 더 맞는다.

김지훈 기자
ALJIstory 편집장

보이지 않는 이면의 진실을 파고드는 심층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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