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를 너무 빨리 퇴장시켰다.” 《데어데블: 본 어게인》에 제기된 이 비판은 문제의 절반만 짚는다. 나는 퇴장 시점보다 그 뒤에 맷을 혼자 남겨 둔 시간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포기는 변호사이자 데어데블인 맷 머독의 친구다. 첫 회는 그의 심장박동을 들려주며 맷의 특별한 청각을 친구를 잃는 고통으로 바꾼다. 나는 이 대목에서 몸이 굳었지만, 충격이 큰 만큼 그다음에 맷이 누구에게 기대는지도 보고 싶었다.
맷은 가면을 벗고 변호사 일에 매달린다. 경찰 살해 혐의를 받은 헥터 아얄라를 돕는 일은 그가 여전히 남을 위해 싸운다는 증거지만, 남을 돕는 일과 자신이 도움을 받는 일은 다르다.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 피스크가 뉴욕 시장까지 된 마당에 다시 싸워야 할 이유는 충분하니, 내 질문은 하나다. 이 드라마는 맷이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 관계도 충분히 보여 주는가?
《데어데블: 본 어게인》은 맷이 다시 싸워야 하는 이유는 설득하지만, 그를 다시 일으킬 사람들을 너무 오래 비워 둔다.
포기를 잃은 순간보다 그다음의 빈자리가 문제다
나는 포기를 일찍 잃게 한 선택보다, 남은 맷을 오래 혼자 둔 선택이 더 아쉽다. 상실로 이야기를 시작했다면, 그 상실을 안고 사람을 만나는 시간도 줘야 한다.
첫 회의 소리는 그 요구를 더 크게 만든다. 심장박동은 맷에게 친구가 아직 곁에 있다는 신호다. 그 소리를 듣는 능력과 친구를 구하는 능력은 같지 않다.
이 차이를 붙잡은 선택은 정말 좋다. 특별한 능력이 있으니 덜 무력하리라는 기대를 깨기 때문이다. 맷은 남보다 더 들을 수 있지만, 그래서 잃는 순간도 피하지 못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격의 잔혹함만이 아니다. 포기가 맷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긴 설명 없이 느끼게 한다. 친구의 생사가 맷이 듣는 소리에 걸리는 순간, 능력 소개는 끝나고 한 사람의 고통이 시작된다.
그렇게 가까이 들려준 관계가 사라졌으니, 이후의 침묵도 무거워야 한다. 캐런은 맷과 포기의 오랜 동료지만, 맷은 그와도 멀어진다. 친구 하나를 잃은 일이 남은 친구와의 거리까지 벌려 놓는다.
이 반응 자체는 납득한다. 큰일을 겪었다고 누구나 곧바로 속을 털어놓지는 않는다. 맷이 가면을 벗고 일에 매달리는 행동에도, 더 잃지 않으려는 두려움이 묻어난다.
다만 나는 그가 숨는 이유를 이해한 다음도 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피하는 맷과, 그래도 곁에 있으려는 사람이 부딪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야 혼자 지내는 시간이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관계의 이야기가 된다.
맷, 혼자 버티기는 치료 계획이 아니야.
물론 드라마가 맷에게 당장 위로받으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다. 슬픔이 대화 한 번으로 끝나면 그것도 거짓말이다. 내가 아쉬운 것은 회복이 느리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느린 회복을 함께 겪을 사람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은 맷을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계속 움직인다고 무너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남을 위해 할 일이 생기는 것과 자기 슬픔을 말할 상대가 생기는 것은 다르다.
이 시즌은 앞의 필요를 빠르게 채우고, 뒤의 필요는 오래 기다리게 한다. 그래서 맷이 변호사로 돌아간 선택에는 기대와 걱정이 함께 붙는다. 그렇다면 친구를 잃은 맷에게 변호사라는 일은 버틸 힘을 주는가?
법정은 가면을 벗은 맷을 살려 낸다
헥터 사건은 맷에게 필요한 것이 더 센 주먹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제대로 보여 준다. 나는 이 법정 장면들이 가면을 벗은 맷에게 싸울 자리를 돌려준다는 점에서 좋다.
경찰 살해 혐의를 받은 헥터 아얄라를 돕는 데 필요한 것은 변호사의 판단과 말이다. 상대를 쓰러뜨리는 힘으로는 의뢰인에게 씌워진 혐의를 벗길 수 없다. 맷은 다른 방법으로 한 사람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여기서 법정은 다음 액션을 기다리는 장소가 아니다. 맷이 데어데블로 돌아가지 않아도 남을 위해 싸울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장소다. 가면을 쓰지 않은 시간이 곧 영웅의 휴업 기간은 아니다.
나는 맷이 변호사로 일하는 대목에서 오히려 마음을 놓았다. 친구를 잃은 뒤에도 그에게 남은 것이 죄책감만은 아니라서다. 타인의 사정을 듣고 도울 방법을 찾는 능력은 아직 살아 있다.
이 차이는 크다. 분노가 생겨야만 움직이는 인물이라면 새로운 적만 계속 필요하다. 하지만 맷에게는 도움을 청하는 사람도 다시 하루를 시작할 이유가 된다.
그렇다고 법정에서 일하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윌슨 피스크는 이제 뉴욕 시장이다. 그는 치안과 단속을 자기 권력을 키우는 데 이용한다.
시장 당선은 범죄 경력 삭제 버튼이 아니다.
헥터에게는 법의 보호가 필요하고, 피스크는 바로 그 법의 권위를 차지한다. 이 둘을 함께 놓으니 맷이 법을 믿는 이유와 법만 믿기 어려운 이유가 선명해진다. 변호사라는 일을 존중하면서도 그 일의 한계를 피하지 않는 선택이다.
여기서 법정극은 맷의 재기를 떠받치는 중요한 몫을 해낸다. 맷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다. 친구를 지키지 못했다는 실패가 그가 하는 모든 일을 무효로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의뢰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과 자신도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은 별개다. 헥터 사건은 맷이 버틸 일을 주지만, 그가 마음을 털어놓을 관계까지 대신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다시 싸울 이유가 이만큼 충분하다면, 배우들은 맷이 버틸 관계까지 설득하는가?
배우들은 버티지만 새 연애는 맷을 받치지 못한다
찰리 콕스는 맷의 갈등을 붙들지만, 헤더와의 연애는 그가 기댈 관계로 충분히 자라지 못한다. 맷이 괴롭다는 사실은 전해져도, 왜 이 사람 앞에서 마음을 놓는지는 덜 전해진다.
헥터를 변호할 때 콕스가 보여 주는 힘은 자신을 통제하는 태도에 있다. 법정에서는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변호사로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 폭력 앞에서 감정이 풀려나는 맷도 같은 사람이기에, 그 절제가 더 절실하다.
나는 이 차이가 좋다. 가면을 벗었다고 분노까지 벗어 놓은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전한다. 맷의 변호사 생활을 도피로만 만들지 않으면서, 그 안에 숨은 고통도 지우지 않는다.
빈센트 도노프리오는 시장이라는 직함 뒤에도 피스크의 위협을 남겨, 맷이 혼자 감당할 상대가 아님을 설득한다.
그렇다면 맷의 새 연인인 상담사 헤더 글렌은 어떤 힘을 주는가. 마르가리타 레비예바가 맡은 헤더는 피스크 부부의 상담도 담당한다. 맷의 사생활과 적수의 생활이 한 사람을 통해 연결된다.
뉴욕의 상담 예약표가 인물 연결까지 책임진다.
이 설정이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두 이야기를 만나게 하는 속도에 비해,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은 부족하다. 연인이라는 자리는 생겼는데, 서로에게 기대는 시간은 그 자리를 충분히 채우지 못한다.
헤더가 맷의 어떤 모습에 안심하는지 더 보고 싶었다. 맷도 헤더에게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감추는지, 그 선택이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필요했다. 비밀이 있다는 설정만으로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함까지 생기지는 않는다.
이 부족함을 레비예바의 연기 탓으로 돌리지는 않겠다. 헤더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을 더 크게 표현하는 연기가 아니다. 맷의 연인과 피스크 부부의 상담사라는 역할 사이에서, 자기 판단을 쌓아 갈 시간이다.
상담사라는 직업도 연인의 상처를 저절로 이해하게 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남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맷에게서는 무엇을 듣지 못하는지 보여 줬다면 좋았겠다. 그래야 헤더도 사건을 연결하는 사람을 넘어, 맷이 잃기 두려운 사람으로 다가온다.
새 관계가 그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다면, 익숙한 인물을 지킨 편이 무조건 옳았을까?
포기를 남겨 두는 것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포기가 사라진 뒤 인물 사이의 관계가 덜 살아났다는 비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러니 포기를 죽이지 말았어야 한다는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인물이 계속 곁에 있는 것과 좋은 이야기는 같은 말이 아니다. 포기를 잃고 맷이 가면을 벗는 선택에는 분명한 무게가 있다. 남을 지키던 사람이 가장 가까운 친구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캐런과 멀어지는 일도 그 상실에서 이어진다. 함께 기억할 사람이 오히려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 되는 셈이다. 나는 맷이 이렇게 달라지는 출발점을 받아들인다.
다만 출발점이 설득된다고 그 뒤의 시간까지 저절로 채워지지는 않는다. 맷이 사람을 피한다면, 누가 그 거리를 좁히려 하는지도 보여 줘야 한다. 거절과 재회의 과정이 있어야 고립에서 벗어나는 변화도 믿게 된다.
구작 《데어데블》 시즌 3과 나란히 놓으면 이번 선택의 장점은 더 분명하다. 당시 맷은 피스크와 조건부 약속을 맺는다. 하지만 그 뒤에도 맷의 삶은 안전해지지 않았고, 친구도 지키지 못했다.
이 연결은 이전의 승리를 쓸모없게 만들지 않는다. 한 번 옳은 선택을 했다고 앞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새 시즌은 맷에게 그 불편한 사실을 감당하게 한다.
나는 바로 그 확장을 높이 산다. 피스크를 상대로 얻은 개인의 승리가 일상의 안전까지 지켜 주지는 않는다. 다시 싸워야 하는 이유가 단순히 새 악당의 등장에 머물지 않아서다.
그래서 포기를 남겨 두는 것만으로는 내 불만도 해결되지 않는다. 살아 있는 포기가 익숙한 대화만 반복한다면, 맷이 누구에게 어떻게 기대는지는 여전히 빈칸이다. 필요한 것은 인물의 생존 여부보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시간이다.
포기가 계속 등장하는 판본을 상상하며 점수를 매기고 싶지는 않다. 이 시즌이 택한 상실을 기준으로 따져야 한다. 죽음의 충격을 크게 만든 만큼, 남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에도 무게를 실었어야 한다.
개인의 승리만으로 부족하다면, 이번 시즌은 함께 버티는 힘까지 충분히 쌓았는가?
다시 일어나는 마음을 너무 늦게 돌려준다
맷을 다시 일으키는 관계의 답은 맞지만, 너무 늦게 돌아온다. 그 답을 뒷부분에 몰아 놓으니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 얇아졌다.
결말 이야기가 나오니 싫으면 건너뛰라. 여기서는 캐런이 맷에게 친구가 얼마나 그를 믿었는지 일깨우는 대목만 짚겠다.
캐런은 맷에게 새로운 싸움의 명분을 설명하지 않는다. 포기가 그를 믿었다는 사실을 다시 들려준다. 적이 얼마나 위험한지보다, 친구가 그를 어떤 사람으로 여겼는지가 먼저다.
나는 여기서 맷을 걱정하는 마음이 비로소 받아들여진다고 느꼈다. 누군가를 구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그도 믿음과 도움을 받을 사람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데보라 앤 월은 이 오래된 신뢰를 힘으로 만든다. 캐런이 맷에게 건네는 말은 그의 사정을 처음 듣는 사람의 위로와 다르다. 함께 포기를 알았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월이 좋은 이유는 캐런을 맷의 정답을 대신 말하는 사람으로 끝내지 않아서다. 포기를 기억하는 동료가 그 앞에 선다. 맷의 상실이 캐런 자신의 상실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대화의 무게를 만든다.
그래서 이 대목은 재기를 복수와 구별한다. 친구를 잃었으니 적에게 되갚자는 말만으로는 맷을 다시 세울 수 없다. 친구가 믿었던 자신을 버리지 않는 일도 필요하다.
문제는 이 관계가 보여 주는 힘을 앞에서도 더 느끼고 싶었다는 점이다. 대화가 설득될수록, 그전까지 비어 있던 시간이 더 아깝다.
마지막 날에만 재활 운동을 한다고 다리에 힘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캐런의 말을 늘리라는 주문은 아니다. 맷이 누군가의 걱정을 피하고, 다시 듣고, 조금 받아들이는 시간을 나눠 줬어야 한다. 그래야 믿음을 돌려받는 순간이 앞선 시간과 이어진다.
이 장면이 앞선 외로움을 없애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맷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 정확히 드러낸다. 싸울 상대는 줄곧 있었지만, 약해진 자신을 보여 줄 사람은 드물었다.
결국 내가 이 시즌의 값을 매길 때 따질 것은 그것이다. 싸워야 할 이유를 잘 만든 성취가, 함께 버티는 시간을 덜 준 아쉬움을 얼마나 감당하는가.
총평: 싸울 이유보다 기댈 사람을 더 보여 줬어야 한다
나는 《데어데블: 본 어게인》 시즌 1을 추천한다. 다만 맷의 귀환을 온전히 반기는 마음으로 추천하지는 못한다. 다시 싸워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만,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관계는 너무 늦게 채워진다.
첫 회의 심장박동과 헥터 사건의 법정극은 맷의 상실과 신념을 정확하게 붙든다. 반면 헤더와의 연애는 그를 받쳐 주지 못하고, 오래된 동료의 신뢰는 뒤늦게 돌아온다. 내 별점은 5점 만점에 3.5점이다. 법정에서 버티는 맷은 설득했지만, 사람에게 기대는 맷은 충분히 보여 주지 못했다.
영웅의 주먹만큼 변호사의 말이 궁금하다면 시간을 쓸 가치가 있다. 법의 보호가 필요한 의뢰인과 법의 권위를 차지한 피스크를 함께 보는 재미가 분명하다. 맷이 가면을 벗은 시간에도 남을 위해 싸운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 대목이 특히 좋다.
반대로 맷·포기·캐런이 함께하는 관계극을 가장 사랑했다면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것이다. 한 시즌 안에서 싸움이 말끔하게 끝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도 맞지 않는다. 익숙한 인물의 귀환만 기대하면 이 시즌이 오래 미루는 것이 더 답답하다.
볼 때는 맷이 언제 가면을 쓰는지보다 누구 앞에서 혼자 버티기를 멈추는지 따라가길 권한다. 첫 회에는 심장박동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라. 맷의 능력이 친구를 잃는 고통으로 바뀌는 순간이 이 시즌의 출발점이다.
함께 볼 작품은 구작 《데어데블》 시즌 3이다. 피스크와 맺은 조건부 약속 이후를 나란히 보면 이번 시즌의 질문이 또렷해진다. 혼자 얻은 승리가 소중한 사람들의 안전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맷에게 필요한 건 가면을 다시 쓸 이유만이 아니다. 그 가면을 벗고 돌아갈 사람도 필요하다.
자주 묻는 질문 (FAQ)
넷플릭스 《데어데블》을 안 봐도 이해할 수 있나요?
새로운 사건은 따라갈 수 있지만, 맷과 포기·캐런의 관계를 알면 상실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구작부터 보는 편을 권합니다. 특히 시즌 3은 맷과 피스크의 대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1986년 만화 《본 어게인》을 그대로 옮겼나요?
아닙니다. 제목은 가져왔지만 동명 만화를 그대로 각색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해당 만화의 주요 요소는 구작 시즌 3에서 이미 활용됐으므로, 장면 재현보다 몰락과 재기라는 공통점을 따라가는 편이 좋습니다.
시즌 1은 몇 부작이고 어디서 볼 수 있나요?
2025년 시즌 1은 총 9부작이며 디즈니+ 드라마입니다. 이 리뷰의 별점과 판결도 시즌 1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액션보다 법정 장면이 많은데도 볼 만한가요?
헥터 아얄라 사건의 법정극은 이 시즌을 추천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맷이 주먹 대신 판단과 말로 사람을 지키는 과정이 살아 있습니다. 액션만 기다리기보다 변호사로서의 싸움도 함께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구작의 세 친구 관계를 좋아했다면 추천하나요?
그 관계가 가장 좋았다면 아쉬움이 큽니다. 시즌 초반부터 익숙한 관계에 큰 변화가 생기고, 맷을 받쳐 줄 사람들의 자리가 오래 비어 있습니다. 도시 권력과 법의 충돌에도 관심이 있다면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